“서울 광화문 일대만 해도 지하로가 제한적이잖아요. 싱가포르의 주요 오피스 빌딩과 상업시설은 대부분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습니다.”
싱가포르 땅속엔 '또 하나의 도시'가…
국내 기업 싱가포르지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싱가포르는 열대우림 기후지만 비를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하 공간엔 음식점과 상점 등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들어섰다. A씨는 “오피스 빌딩 지하부를 지하철 플랫폼과 연결하는 건 공사 난도가 높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싱가포르가 기업 종사자의 편의를 위해 신경 쓴 디테일 중 하나”라고 했다.

9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둥지를 튼 글로벌 기업 아시아·태평양 본부는 약 5000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틱톡 등이 대표적이다. 홍콩(약 1400개), 상하이(약 940개) 등 아시아 주요 도시보다 많다. 한국은 100개 이하여서 경쟁 상대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2년 글로벌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을 아시아본부 1순위로 고려한다고 답한 비율은 3.3%에 그쳤다. 싱가포르(32.7%)와 홍콩(13%), 일본(10.7%), 중국(9.3%)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인도(5.3%), 태국(3.7%)보다도 낮았다.

싱가포르에 돈과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싱가포르는 낮은 세금, 노동 유연성, 지정학적 위치, 영어 사용 등 여러 장점이 있다. 외국인이 살기 편하게 도시 인프라를 잘 갖춘 점도 한몫한다. 글로벌 허브 공항인 창이공항이 자리한 데다 도시 곳곳에 지하철망이 촘촘하게 깔렸다. 복합개발로 도심 속 주거시설 공급도 늘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가 면적은 좁지만 인구 밀도는 서울보다 낮고 곳곳에 공원 등 녹지가 많다”며 “홍콩과 비교하면 주거시설의 평균 유닛(가구) 면적이 큰 편”이라고 했다. 도시를 설계할 때 주민과 민간 디벨로퍼(시행사)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정주 여건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정부가 국제도시로 키우고 있는 인천 송도와 영종, 청라 등이 속한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실적은 2012~2018년 매년 9억달러 안팎이었는데, 지난해엔 4억3200만달러에 그쳤다. 영종에선 국제학교와 종합병원 건립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비교적 자족 기능을 갖춘 송도는 서울 여의도, 강남 등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한계로 꼽힌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경직적인 노동 규제, 높은 세금 등이 글로벌 기업의 한국행을 망설이게 한다”며 “국제도시 개발 사업이 여러 곳에서 난립한 데다 택시나 배달 앱 사용이 쉽지 않은 점 등도 한국의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