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경영 오지랖] "다 안다" 착각 부르는 '보고 중독'
리더는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한다. 큰 조직일수록 보고서 종류와 횟수도 많아진다. 리더의 고뇌도 깊어진다. 정제된 언어로 잘 분석된 보고서를 받아 읽고 질문하면서 전략, 인사, 마케팅, 재무, 투자, 인수합병(M&A)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보고가 늘수록 리더가 알게 되는 정보의 양도 늘어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수많은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된 온갖 정보 때문에 리더에게 ‘정보 비대칭성’이 생긴다. 구성원은 자신이 맡아 보고하는 분야 외에는 알기가 어렵지만, 온갖 보고를 받는 리더는 본인이 모든 문제를 마치 다 알게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정보 비대칭성이 일으킨 ‘지식 착각’ 현상이다. 리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업무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고 손쉽게 알게 된 수많은 정보를, 마치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쌓아 올린 지식의 체계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사실 보고서는 지식을 쌓고 사안의 본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지혜와 통찰을 얻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 신속하고 ‘틀리지 않게’ 위험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잘하게 돕는 수단일 뿐이다. 그 자체로 리더에게 지혜를 주지는 않는다.

리더가 보고하는 직원들에게 ‘왜 이런 건 고려하지 않느냐’ ‘이것은 알고 있느냐’라고 물으며 트집까지 잡기 시작하면 보고서의 형식과 내용도 변한다. 사안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어 정확한 분석을 하기보다 다른 부서에서 어떻게 무슨 내용을 보고했는지 파악하기 급급해지고 적당히 잘 넘어갈 내용으로 구성하게 된다. 이런 보고서가 늘수록 좋은 의사결정, 현명한 판단은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보고 중독’으로 이어진다. 뭔가를 다 파악하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내가 여러 사안을 잘 알고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상황을 위해 자꾸만 필요 없는 보고를 요구하게 된다. 중요한 분석에 충분한 시간과 소통, 수정이 필요한 단계에서도 그럴싸한 보고서로 작성된 결과물만 요구하게 되고, 이내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다시 ‘왜 보고를 받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다. 리더가 지혜와 통찰을 얻으려면 리더 스스로 체계적·누적적 지식을 쌓고, 내·외부 전문가들과 깊이 있게 토론하고 그 내용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수많은 보고서를 읽고 얻게 된 정보 비대칭성을 나의 지식, 나의 지혜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나 리더인 내가 어느 순간 보고 중독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빨리 보고해”라고 말하기 전에 궁금하거나, 고민되는 지점이 있으면 스스로 먼저 숙고하고 자료를 찾아보는 시간도 가져보자. 인공지능(AI)과 검색 시스템이 발달한 요즘에는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내가 그 습관을 안 갖고 있을 뿐이다. 임원급 리더의 높은 연봉은 많은 보고서를 읽고 얻게 된 정보의 양 때문이 아니라, 그 수많은 정보 속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통찰력’ 때문임을 상기하자.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