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경찰의 ‘늑장 수사’로 지연되면서 방위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수사 자체는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간 ‘소송전’으로 시작됐지만, 경찰 수사가 지연되면서 방위사업청이 하반기 예정된 KDDX 사업자 선정 시기를 미루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방사청 “수사 결론 나와야 본입찰 가능”

경찰 늑장수사에…암초 걸린 'K-이지스함'
11일 방산업계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당초 7월로 예정했던 KDDX 초도함 발주를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법정분쟁이 발생함에 따라 사업 입찰 시점을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로 미뤘다. 업계 관계자는 “수사 중 사업자를 결정할 경우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는 데다 수사 대상에 전 방위사업청장이 포함돼 난처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차세대 KDDX 사업은 6000t급 신형 구축함 6척을 2030년까지 실전 배치하는 프로젝트다. 개발비 1조8000억원에 건조비로만 6조원이 투입된다. KDDX는 소나와 레이더를 비롯해 각종 무장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되는 첫 국산 구축함으로 ‘미니 이지스함’으로 부를 정도로 국방과 방산 수출에서 중요한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2012년 개념설계 사업자로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2020년 기본설계 업체로는 HD현대중공업을 선정했다. 당초 지난 7월 상세설계 및 초도함 제작사를 뽑는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력 업체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소송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에서 진행 중인 두 회사 관련 수사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왕정홍 전 방사청장이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될 당시 HD 측에 유리하도록 규정을 변경해줬다는 의혹이다. 두 번째는 2012~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행위 당시 임원도 개입했다는 정황을 확인해 달라며 지난 3월 한화오션이 경찰에 고발해 시작된 수사다. 세 번째는 HD현대중공업 직원이 한화오션 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한 사건이다.

업계 “국수본 수사 의지 있나”

경찰은 관련 수사를 경찰 내 수사 분야 최고 엘리트 조직인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에 맡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수본이 대통령실이 지시한 ‘사교육 카르텔 수사’에 역량을 집중하느라 방산 수사를 뒷전으로 미룬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착수 14개월 만인 지난달 말에야 왕 전 청장을 처음 소환조사했다.

방산업계와 국방부는 해군 전력 증강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으려면 최소한 올가을 안에 KDDX 초도함 사업자가 확정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초도함 사업 이후 진행될 후속함 사업과 해군 전력화, 수출 가능성 타진 등의 일정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사업자 선정에 대비해 하청사와 가계약을 맺어두고, 사업 준비에 수백억원을 지출한 HD현대중공업 등 업계의 손해도 막심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경찰의 방산 관련 수사 역량 부족도 수사 장기화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0년(2014~2023년)간 경찰이 산업기술 관련 수사를 878건 다루는 동안 방산 관련은 5건에 불과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잡음이 많은 방산 수사를 꺼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찰 내부 한 관계자는 “연말 인사평가를 위해서라도 관심이 많은 사교육 카르텔 등을 우선 다루려 하고 업체 간 이해가 얽히고 복잡한 방산 수사는 다소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철오/김대훈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