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세기의 임대인·임차인
1998년 9월, 캘리포니아 먼로파크에 신혼집을 차린 수전 워치츠키 부부가 두 명의 스탠퍼드 대학원생에게 방 두 개와 차고를 월 1700달러에 임대했다. 집 사느라 빌린 은행 빚을 갚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는데 결과적으로 ‘세기의 임대차 계약’이 됐다.

차고를 빌린 대학원생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다. 이들은 수전의 차고에서 빠르게 회사를 키웠고 6개월도 안 돼 더 넓은 사무실로 옮겼다. 그러면서 수전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수전은 “미쳤냐”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벤처기업 구글의 16번째 직원이 됐다. 구글의 잠재력에 베팅한 것이다.

수전은 2006년 구글의 유튜브 인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수전은 구글의 무료 동영상 사이트 ‘구글 비디오’ 책임자였는데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유튜브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구글 비디오를 키우는 것보다 유튜브를 인수하는 게 더 낫다고 보고 창업자들을 설득, 구글은 16억5000만달러에 유튜브 인수를 결정했다. 시장에선 “오직 바보만이 유튜브를 인수할 것”이란 비아냥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튜브는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로 성장했고 기업 가치가 400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전은 2014년부터 9년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수전은 구글에서 일하면서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운 ‘슈퍼 우먼’이었다. 장난감 회사 마텔이 지난해 성공한 여성들을 바비 인형으로 제작할 때 수전은 여동생 두 명과 함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수전의 바로 아래 여동생 재닛은 캘리포니아 의대 교수, 막내 여동생 앤은 유전자 검사 기업 23앤드미 창업자이자 구글을 만든 세르게이 브린의 첫 아내였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수전은 지난해 “가족과 건강, 개인 프로젝트에 더 초점을 맞추겠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랬던 그가 엊그제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숨졌다. 56세의 안타까운 나이였다. ‘구글 엄마’의 영면을 빈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