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쌍둥이 침체 우려에…원자재 시장도 '매도 폭탄' [원자재 포커스]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에 놀란 헤지펀드들이 이달 초 13년만에 최대 규모의 원자재 파생상품 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미국의 '쌍둥이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재 하락 사이클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헤지펀드들은 지난달 30일~지난 6일 동안 20개 원자재 시장에서 약 15만3000개의 선물·옵션 순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후 13년만의 최대 규모다. 헤지펀드들이 매수보다 매도 포지션을 더 많이 가져간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대규모 매도는 이 기간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들이 침체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 발생했다. 지난 1일 발표된 6월 미국 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8을 기록하며 예상치(48.8)를 크게 밑돌았다. PMI 지수는 50을 넘으면 설문 참여자들이 경기 확장을, 못 미치면 경기 하락을 예상한다는 뜻이다. 지난 2일 발표된 7월 미국 실업률도 전월 대비 0.2%포인트 늘어난 4.3%로 침체 공포를 불러왔다.

원자재 가격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국제 유가는 침체 우려로 뚝 떨어졌다. 지난달 31일 배럴 당 77.91달러를 기록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3거래일 만인 지난 5일 6.38% 하락해 72.94달러로 떨어졌다.
최근 1년 철근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1년 철근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금속 시장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 경기가 차갑게 식은 데 이어 미국 수요까지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다. 지난해 11월 철근 선물 가격은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톤(t)당 4000위안(약 76만원)에 거래됐으나 중국 부동산·제조 경기가 둔화하면서 이달 들어 3000위안(약 57만원)대로 급락했다.
최근 1년 구리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1년 구리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해 '닥터 쿠퍼'로 불리는 구리는 올해 상반기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급등했으나 경기 침체 영향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파운드 당 3.64달러에 거래되던 구리는 지난 5월 5.11달러까지 올랐으나 12일 3.98달러까지 다시 하락했다.
최근 5년 밀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5년 밀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농산물 가격은 2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5월 부셸(1부셸=27.216㎏)당 1177달러였던 밀 가격은 12일 절반 이하인 539달러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콩 가격은 부셸 당 1732달러에서 1020달러, 옥수수 가격은 781달러에서 375달러로 하락했다.

에너지·산업금속·귀금속·곡물·축산 등 24개 원자재로 구성된 블룸버그 원자재지수(BCOM)는 지난 9일 95.51로 2022년 5월 대비 27.28%, 지난 5월 대비 10.93% 하락했다. 마이크 맥글론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수석 원자재전략가는 원자재 약세의 원인을 에너지·농산물 공급 증가, 중국 수요 감소, 달러 강세 등으로 거론하며 "지금은 약세장"이라고 평가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