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머금은 호수를 뒤로 하고 야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제.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음악공연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영화제. 이 모든 걸 5일 내내 할 수 있는 영화제가 있다. 바로 올해 20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하 제천영화제) 2년 전 집행위원장 교체와 예산 삭감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다. 작년에 새로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한 이동준 영화 음악감독 (<1947 보스톤>, <장르만 로맨스>, <이웃 사촌> 등) 과 함께 올해 영화제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응원하는 이 영화제를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준 음악감독은 헐리우드 스타일의 오케스트레이션과 한국적 정서를 결합해 영화음악의 새로운 장을 연 충무로 1세대 영화 음악감독이다.
사진. ⓒ박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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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하고 두 번째 영화제를 맞는다. 예산 삭감을 포함해 영화제에 많은 부침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영화관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제천 영화제의 허브가 되었던 제천 CGV는 올해 2월 폐업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나. 최대한 영화제답게 감성적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제천 예술의 전당, 세명대학교, 자동차 극장을 포함해서 총 7군데에서 상영된다. 이 가운데 관객들의 동선을 고려해 셔틀버스와 이동 수단을 최대한 풀 가동해서 불편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물론 그럼에도 시설이나 여러 면에서 관객들은 불편할 수 있지만 살아가는 커뮤니티에 극장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극장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삭막하고 슬픈 일인가에 대해서 역설적으로 시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웃음)."

▷ 올해 슬로건이 특이하다. 수페라스켄도(superascéndo)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음악 용어로 ‘초월하다,’ ‘뛰어넘다’라는 뜻이다. 작년에 새로 부임하면서 19년을 맞는 영화제의 많은 것들에 대해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뭔가 초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 용어 중에 ‘다 카포’ (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다) 라는 용어를 택했는데 올해 역시 음악 용어를 슬로건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20년을 맞는, 그러니까 이제 ‘성년’을 맞는 이 영화제에서 뭔가 방향성과 미래를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고, 도약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붙여진 슬로건이다."
사진. ⓒ박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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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오랜 시간 동안 제천 영화제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집행위원장이 언젠가 되어야겠다거나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에 권유를 주셨을 때 정중히 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음악가, 혹은 (영화와) 음악의 전문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좋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많이 고민했고, 뭔가 해 볼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곡을 만들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걸 보는 순간을 가장 행복해하듯, 영화제도 그렇게 꾸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지휘자가 된다면, 프로그래머가 악장이 된다면, 그리고 스텝들이 오케스트라가 된다면 완성된 영화 음악처럼 좋은 영화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과 의욕에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웃음)."

▷ 위원장으로서, 그리고 현역에 있는 영화음악 감독/뮤지션으로서 막상 영화제를 시작을 해보니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인가. 동시에 가장 즐거운 점은?
"아무래도 영화음악 작곡가라는 원래의 내 직업 역시 협업이 필요하지만 혼자 작업할 때가 많은 직업이 아닌가. 반대로 영화제를 통솔하는 일은 100퍼센트 협업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웃음).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위원장으로서, 음악가로서 작년 영화제의 개막식 무대에서 내가 만든 곡으로 연주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함께 협주했다)를 했을 때다. 힘들지만 영화제의 준비를 마치고 수많은 관객 앞에서 개막식을 통해 영화제를 공개하고, 그 가운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음악가, 그리고 동시에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고유하고도 특이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른 나라의 음악영화제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올해 역시 집행위원장의 연주가 있을 것이고 이 전통만큼은 제천의 고유한 ‘코너’로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사진. ⓒ박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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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의 특이한 이력에 대한 질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감독님은 영화음악 작곡가이지만 음악 커리어의 시작은 헤비메탈 밴드의 멤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흥미로운 시작이다.
"맞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헤비메탈 밴드, ‘플라즈마’ 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던 것이 내 음악 커리어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리스트 임창수, 드러머 이수용 등이 함께 했던 멤버였는데 모두 나중에 신해철이 이끄는 ‘넥스트’의 멤버가 되었다. 사실 플라즈마는 1년 밖에 활동하지 못했는데 내가 이듬해에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야 했고, 팀은 해체되었다. 서울에 와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데 그때 만해도 영화 음악이 지금처럼 전문화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리지널 영화 스코어의 1세대는 아니다. 고전 한국 영화에도 늘 음악과 스코어가 존재했다. 다만 기획 영화가 등장하면서 그런 것들이 더 전문화, 필수화되었을 뿐이다."

▷ 다시 영화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올해 심사위원을 포함 해외 게스트 리스트가 출중하다. 특히 이와이 슌지 감독의 한국 방문은 오랜만이라 반갑다. 음악감독으로서 인연이 있었던 것인가? 또한 이와이 슌지 말고도 주목할 만한 해외 게스트들이 있나?
"이와이 슌지는 올해 해외경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국제영화제에 있어서 해외 게스트의 다양성과 전문성, 특히 국제 영화 심사위원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작년부터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었고, 우리 영화제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연이 있어서 모시게 된 게스트는 아니다. 영화제를 통해 공식 초청을 했고, 한국을 워낙 좋아하는 감독으로서, 그리고 영화에서 음악을 매우 잘 쓰는 감독이 아닌가. 그러한 관심사로, 절대적으로 영화제에 대한 애정으로 내한이 이루어지게 된 게스트다. 또한 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덴마크의 영화평론가, 앤 린트 앤더슨도 해외 섹션 심사위원으로 모실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냉정과 열정사이>의 음악을 작곡했던 작곡가, 요시마타 료가 영화제에 수상자로 방문할 예정이다. 그의 단독 콘서트가 영화제의 메인 이벤트 중 하나로 열린다. 그의 연주를 제천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관객들에게는 매우 귀하고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24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와 작곡가 요시마타 료 / 사진출처. 한경DB·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2024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와 작곡가 요시마타 료 / 사진출처. 한경DB·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 올해의 개막작이 궁금하다.
"<아바: 더 레전드> (원제: ABBA: Again the Odds)라는 작품이다. 아바가 유로비젼에서 승리하며 전 세계로부터 발굴된 그 역사적인 순간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다. 여러 가지 작품을 놓고 프로그래머와 함께 고심을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부른 수많은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역시 개막작 후보로 유력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아바의 영화로 결정되었다. 전 세대가 음악적 취향을 초월해서 좋아하는 밴드가 아닌가. 또한 영화적으로도 그들의 그러한 보편성과 특이성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 올해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일단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제천에 부침이 없지 않았기에 ‘변화’가 눈에 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별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영화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적이 없다. 변화도 좋지만, 영화제의 정체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Music and Film Festival 이다. 음악과 영화가 공존하는 곳이고, 영화를 통해서 음악을 즐기는 곳, 혹은 그 반대(음악을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 제천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였던 ‘원 써머 나잇’은 스테디셀러로 잘 기획했다. 올해는 올드 앤 뉴의 컨셉으로 레트로와 컨템포러리 뮤지션들을 모아 세대의 ‘수프라센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개봉 50주년을 맞아 특별 토크 행사도 열릴 것이다."
사진. ⓒ박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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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한 타파스 바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끝이 났다. 올해 제천에서 상영될 음악 영화들과, 그 음악 영화들 사이를 빼곡히 채울 음악, 공연 이야기만으로도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다 쓰고 남을 정도로 설레는 시간이었다. 올해 영화제가 극장이 없는 상태로 열린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제천시의 모든 랜드마크와 상영 공간들, 그리고 커뮤니티의 공간들을 활용해 영화제가 치러질 것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지역 영화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한다. 음악과 영화, 사람과 자연이 충만한 축제라면, 그것만으로도 흥겹지 않은가.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