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배달 라이더≠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한 이유
플랫폼(platform)은 열차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뜻하는데, 요즘에는 배달 대행이나 퀵서비스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으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가치를 거래하도록 만든 ‘플랫폼 경제’가 급성장했고, 고용계약 체결 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단기적으로 일을 구하고 소득을 얻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종사자들도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플랫폼종사자의 법적 지위는 근로자일까, 아니면 개인사업자일까?

플랫폼종사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첨예하다.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는 사용자를 특정하고 의무를 지워 근로자를 보호하도록 설계됐다. 그렇기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핵심 징표는 ‘사용종속성’이다. 경제적 종속뿐 아니라 인적 종속까지 돼야 하므로, 사용자의 지배 하에 노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플랫폼종사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 등을 맺고 일거리와 근무시간, 장소 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자적 측면이 있는 반면, 플랫폼 기업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데이터와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일정한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근로자적 측면이 공존한다. 산업혁명 시대에 집단적이고 획일화된 공장 노동에서 개별적 자유 노동으로 바뀌는 흐름에서, 사업자와 근로자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게 된 것이다.

종래는 플랫폼종사자를 개인사업자로 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들을 포함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한 현실에서 각종 노동관계법령상 근로자 개념을 넓혀 근로자로 인정하려는 시도가 지속됐다. 그 결과 산업재해와 관련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로 보호받게 되고, 노동조합 및 단체교섭 등에 관련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상 근로자(판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종속성을 덜 요구한다)로 인정받는 추세이기는 하나, 인적 종속성이 약한 경우까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지는 사안별로 각개 전투 중이다.

근로자성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판결이 2건 선고됐다. 먼저 2024. 7. 12.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배달대행 플랫폼과 위탁계약을 맺은 라이더(위탁 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2. 선고 2022가합534381 판결). 기존 대법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 법리를 충실하게 따른 판결이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업무수행 내용과 방법(업무수행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는지,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구속받는지,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지),

◇독자적인 사업자성(근로제공 관계의 계속성,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 유무와 정도,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는지),

◇보수의 성격과 내용(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

◇기타(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는 등 경제·사회적 조건 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구체적으로 위탁 라이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부정된 이유를 보면,
① 업무수행 내용과 방법에 관해 △위탁 라이더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서 어떠한 배달요청을 수행할 것인지 자율적으로 결정한 점, △회사가 기본/할증 배달료 산정방식을 결정하고, 레벨업 제도, 페널티 제도 등을 통해 위탁 라이더로 하여금 특정 배달 주문을 수락하도록 유도하긴 했으나, 최종적인 수락 여부는 위탁 라이더가 결정한 점, △강제 배차는 이뤄지지 않은 점, △문제 발생 시 대응 요령, 주의사항 등이 담긴 상황별 대응요령은 구체적인 업무방식을 지시했다기보다 배달업무 수행 과정에서 상점, 고객과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하고 효율적 업무수행을 돕기 위한 것인 점 등에 비추어, 회사가 업무내용을 정했다고 보지 않았다.

② 취업규칙 적용과 관련해서는 △회사에 별도의 취업규칙 내지 복무규정이 존재하지 않은 점, △위탁계약상 위탁 라이더에게 부과되는 음주운전, 마약, 폭력 금지는 법령상 준수의무를 확인한 것에 불과한 점, △교통사고, 배달물품 분실 등 중요 상황 발생 시 회사에 통보하도록 한 것은 근로관계가 아니라 도급 내지 위임관계를 전제해도 어색하지 않은 점, △복장 규정(슬리퍼 착용 금지, 조끼 착용)은 고객에 대한 불쾌감 방지 차원에서 위임 내지 도급관계인 사람에게도 요청할 수 있고, 강제성도 없었던 점이 고려됐다.

특히 ③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과 관련해 △위탁 라이더가 어떠한 배달 주문 등을 수행할 것인지, 배달 경로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한 점, △회사가 고객응대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그 준수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점, △메신저 전체대화방에 위탁 라이더의 업무수행에 관해 요청한 내용은 배달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일반적 요청사항을 공지한 것일 뿐 개별적·구체적 업무 지시라고 보기 어렵고, 이를 준수하지 않아도 제재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회사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④ 근무시간, 장소와 관련하여 △위탁 라이더에게 근무시간, 장소의 결정권한이 있는 점, △출근 시 특정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배달업무 도중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구속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⑤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는지에 관해 △위탁 라이더가 자기 소유의 오토바이를 사용할 수 있고 그 경우 리스 비용을 절감해 실질적 수익을 늘릴 수 있는 점, △회사가 단말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점, △위탁 라이더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이용 명목으로 배달 건마다 수수료를 지급한 점, △위탁 라이더가 제3자를 고용하여 배달업무를 대행할 수는 없었으나 보험 적용 문제 때문으로 볼 여지가 큰 점, △위탁 라이더가 배달업무 소요비용(오토바이 리스료, 보험료, 수리비,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등)을 지불한 점 등이 고려됐다.

⑥ 이윤 창출, 손실 초래 등 위험부담에 관해서는 △위탁 라이더가 어떠한 배달 주문을 수행할지 결정하냐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고, 속도 내지 효율적인 묶음배달 구성 등을 통해 수익을 높일 여지가 큰 점, △실제로 라이더 및 업무수행 시점마다 수익에 상당한 편차가 있었던 점,

⑦ 보수에 관해 기본급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으며, 고용보험등 사회보장제도 적용 시 라이더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취급한 점, ⑧ 전속 라이더도 계속 근무가 강제되지 않고, 겸업이 가능하여 전속성이 높지 않은 점 등이 고려됐다.

위 서울지방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2024. 7. 25. 차량호출서비스 타다와 위탁계약을 맺은 드라이버(타다 드라이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것과는 반대의 결론이다. 양자의 차이는 '업무 자율성', 즉 종속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타다 판결의 경우 협력업체에 근태 관리 자료를 배포해 운전업무 수행절차와 방법을 정하고 이를 반한 드라이버를 제재한 점, 드라이버들이 앱이 지정한 대기장소에서 호출을 대기해야 했고, 일감의 배분과 수행방법도 타다가 지정한 점 등에 비추어 드라이버의 업무자율성이 낮고,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이 이뤄졌다고 봤다.

반면 배달 라이더 판결의 경우 배달 주문 수락 여부, 배달 경로 선택, 강제배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에서 라이더의 업무상 자율성이 있고, 회사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배달 라이더 판결에서 주목할 것은 법원이 근로자성 확대로 인해 플랫폼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종속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공유경제질서의 출현에 따라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성도 있다. 현행법상으로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거나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등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근로기준법의 적용범위를 무리하게 넓히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플랫폼 노동자의 보호 필요성을 들어 근로기준법의 적용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하였을 때 플랫폼 산업이 위축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당초에 보호하려고 하였던 노동자의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타다 드라이버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따르면서도, 온라인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알고리즘 등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타다 드라이버 판결에 비추어 보더라도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일반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별 사안마다 대법원의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비추어 플랫폼 종사자의 구체적인 업무 형태, 계약 내용 등을 통해 근로자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플랫폼종사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근로기준법 적용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인적 종속성을 기초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현행 근로기준법 체계에 맞지 않는 것까지도 억지로 끼워넣는다면 전체 노동법 체계가 흔들리고, 예측가능성과 신뢰 측면에서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또한 플랫폼 경제가 커지고 플랫폼종사자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위탁계약을 맺으면 바로 일감을 구해 돈을 벌 수 있는 쉬운 접근성 덕분이기도 한데, 이를 일률적으로 근로기준법으로 규율하게 되면 고용, 해고가 경직되고 각종 부담이 증가해 사업주가 일자리를 창출할 유인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고, 종속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일하고 일한 만큼 높은 소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유연성도 제한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노무를 전통적인 근로기준법 틀에 일률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정부는 플랫폼종사자를 포함해 ‘(가칭)노동약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법률’을 신속히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노동법의 보호 범위에는 들어올 수 없지만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입법을 통해 제3의 영역으로 보호하겠다는 방향성을 내보인 것이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노무제공자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사회가 지되, 충분히 실효성 있는 보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