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30년간 청정에너지 인프라와 녹색 전환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투자가 슈퍼사이클을 불러올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에너지 금속 농산물 등 모든 원자재 가격이 오르던 2021년 1월, 마크 루이스 BNP파리바 자산운용전략가가 내놓은 전망이다. 개인과 기관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간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며 원자재 투자 열풍에 올라탔다.
헤지펀드, 13년만에 원자재 최대 매도…구리값 3개월새 22% 급락
이 같은 열풍은 3년 반 만에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국제 원자재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미국이 경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2022~2023년 원자재 가격 하락에는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 요인이 해소된 영향이 컸는데, 최근에는 미·중 경기가 가라앉는 등 수요 요인이 더 커 원자재 하락세가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닥터 코퍼’ 구리값 곤두박질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국제적인 원자재 공급 부족 및 수요 증가로 원자재 가격이 수년에서 수십 년간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 2000년대 초반 중국의 세계 무역질서 편입 등이 대표적인 슈퍼사이클 사례로 거론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오를 때도 ‘슈퍼사이클 진입론’이 제기됐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미국·중국 등이 경쟁적으로 친환경 전환에 뛰어들면서 원자재 수요가 공급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봉쇄가 끝난 이후 경제 회복이 맞물리며 희소금속·에너지·농산물 가격이 모두 상승했다. 블룸버그 원자재지수(BCOM)는 2020년 1월 60.89에서 2022년 5월 131.34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러나 2022년 말 최고가를 기록한 리튬·니켈 등 희소금속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성장 일로를 걸을 것으로 전망된 전기차 시장이 오히려 축소되면서다. 2022년 10월 t당 59만7500위안까지 오른 리튬 가격은 이듬해 4월 4분의 1인 17만2500위안으로 떨어졌다. 이후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전기차 시장 둔화를 이기지 못하고 12일 7만7500위안으로 하락했다.

철·알루미늄 등 산업 금속은 지난해 말 중국 부동산 위기의 여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세계 최대 철강 소비국인 중국에서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연쇄 도산한 이후 철·철광석 가격은 줄곧 하락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 1월 t당 144.16달러에서 이날 101.26달러로 29.75% 떨어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필수 소재로 각광받으며 올초 가격이 급등한 구리도 중국 수요 부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파운드(1파운드=0.464㎏)당 3.64달러에 거래된 구리 가격은 5월 5.11달러까지 올랐으나 이날 다시 3.96달러로 내려왔다.

밀 가격, 러·우전쟁 전으로

중국 내수 부진은 농산물 가격도 끌어내리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대두 가격은 올 들어 20% 하락해 부셸(1부셸=27.21㎏)당 10.18달러를 기록했다. 대두 수요는 주머니 사정이 열악해진 중국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급감하는 추세다. 대두는 주로 분쇄돼 돼지 사료로 쓰인다. 역시 돼지 사료로 주로 쓰이는 옥수수 가격도 한 달 동안 7.18% 떨어지며 부셸당 3.75달러를 나타냈다.

밀 가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흔들린 공급망이 회복되면서 내림세를 걷고 있다. 2022년 5월 부셸당 11.68달러까지 치솟은 밀 선물 가격은 이날 5.36달러로 떨어졌다. 마이크 맥글론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원자재전략가는 “에너지 및 농산물 공급 증가, 중국 수요 둔화 등은 견고한 가격 역풍 요인”이라며 “지금은 원자재 약세장”이라고 진단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