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발레 천재 이예은, 파리를 접수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 최고(最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프랑스인 1등 유력 후보생 누르고, 170명 중 1등 입단
10년 뒤 세은보단 예은...발레단 대표 무용수되고 싶다
프랑스인 1등 유력 후보생 누르고, 170명 중 1등 입단
10년 뒤 세은보단 예은...발레단 대표 무용수되고 싶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입단 시험은 치열하다. 세계 각국에서 발레를 잘한다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1차 시험은 연습 수준인 '클래스'에서 판가름난다. 1차를 통과해야 2차(고전 발레)와 3차(컨템퍼러리 발레) 오디션에서 2~5분 남짓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디션은 아침 8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난다. 마치 종일 수학능력시험을 보듯 이뤄진다.
2005년생 발레리나 이예은(19)은 이 바늘구멍을 뚫은 것도 모자라 1등으로 세계 최고 발레단에 입단했다. 발레단 입사를 코앞에 두고 하루하루 분주한 날을 보내던 그를 서울 잠원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오디션에 응한 발레리나만 170여명이었어요. 입단 시험 2등을 한 무용수는 프랑스인인데 이미 프로무용수 경험이 있는 분이었죠. 그런 분을 누르고 제가 1등으로 선발됐다 들었습니다. 입단 시험 며칠전에 왼쪽 엄지발가락 발톱이 부어오르면서 토슈즈를 신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천운이 따라서 당일에는 무사히 시험을 치렀어요. 기적 같아요."
회전할 때 중심축이 되는 왼쪽다리, 무게 중심이 쏠리는 엄지발가락의 이상은 무용수로서는 치명적이다. "일생의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하기에 독하게 통증을 다스렸어요. 하도 마음 고생을 하다보니 오디션 당일에는 마음이 편해졌죠." 이예은은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욕심 내지 말고 하던 대로만 끝까지 해내자라고만 생각했다고. 조급함과 불안함을 내려놓았더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산하에 유서깊은 발레학교가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온 무용수보다는 이 학교 출신 무용수에게 기회가 좀 더 열려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예은이 발탁된 건 무용계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뉴스였다. 모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이예은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한예종 산하 영재원에 몸 담았을 때 김선희 원장은 열살 이예은에게 "학생처럼 추지 말고 춤은 항상 프로처럼 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말이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싹 접었죠. 선생님들의 조언 덕분에 학생이니까 이 정도면 된다는 말에 타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한계를 더 뛰어넘으려고 어린 나이부터 노력했어요."
이예은은 선화예중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한예종으로 갔다. 바로 대학생이 된 셈이다. 그는 "발레 무용수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하루라도 빨리 프로로 뛰고 싶었다"며 "학창시절의 추억과 맞바꾼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프로 무대에 대한 강한 열망 덕에 4년의 대학과정도 3년만에 끝냈다. 그리고 첫 발레단 시험을 본게 세계 최고 실력을 갖춘 파리오페라발레단이었던 것. 그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마음에 두게 된 이유는 첫 공개오디션에 3위에 들면서부터다. 이후 준단원으로서 자격이 주어져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발레단 경험을 했다. "확신을 하게됐어요. 발레단의 조직 문화도 좋고, 공연할 때마다 서로 도우려는 스태프와 무용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열렬한 호응, 우아한 차림새 등 매너를 갖춘 관객들 또한 감동이었죠. 이곳에서라면 정말 행복하게 춤을 추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입단을 다짐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무용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객석에서 제 동작을 봤을 때 편안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흐름도 부드럽고요. 물 흐르듯이 동작을 이어가는게 저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우아하게 느껴지는 발레의 동작은, 매순간 중력을 거슬러야만 완성된다. 신체를 절제하는 능력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가벼운 움직임은 뼈를 깎는 훈련끝에 만들어지는 결과다. 그래서 발레가 냉정하고 잔인한 예술이란 말도 있다. 어느 한순간 무용수가 게으름을 피우면 "퇴화했다"고 뼈아픈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입단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는 한국에 와서 '라 실피드'라는 고전 발레 작품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지난 7월 중순 경기도 분당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발레스타즈> 갈라 공연 무대에서였다. 그는 작품 속 공기의 요정이 돼 하늘하늘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누볐다. 이날 공연의 첫 무대부터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보여줘 관객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역할을 했다. 이예은은 8월 말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건너가 바로 2024-2025년 새 시즌에 투입된다.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의 <돈키호테>라고 했다. "누레예프의 작품은 발동작이 아주 화려하고 복잡해서 매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용수의 도전 의식이 불타게 만들기도 해요. 준단원 시절 그의 <돈키호테>를 경험했는데 전막 내내 주역 무용수가 날고 뛰는 모습이 나오는데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는 동양인 최초로 수석무용수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있다. 그는 발레단 선배로서 이예은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박세은이) 어떤 타이즈가 좋은지, 슈즈의 끈 묶음은 어떻게 할지 세세하게 짚어줬어요. 또 동작에 대한 조언도 많았는데요, 발의 포지션이나 턴아웃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상체도 객석을 향해 앞쪽으로 좀 더 내밀면서 움직이라는 등 뼈와 살이 되는 조언들이 있었어요. 입단 후에도 계속 새겨야할 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나도 그는 20대다. 하지만 프로무용수로서 쌓은 경험은 그 누구보다 깊어질 것이다. 그는 어떤 발레리나가 되고 싶을까?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수 있게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고 살고 있는데요. 점점 발전하는 무용수면 좋겠어요." 1등치고 너무 겸손한 대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대표할 수 있는 발레리나하면 이예은을 떠올리는 날이 와 있지 않을까요(웃음)."
이해원 기자
회전할 때 중심축이 되는 왼쪽다리, 무게 중심이 쏠리는 엄지발가락의 이상은 무용수로서는 치명적이다. "일생의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하기에 독하게 통증을 다스렸어요. 하도 마음 고생을 하다보니 오디션 당일에는 마음이 편해졌죠." 이예은은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욕심 내지 말고 하던 대로만 끝까지 해내자라고만 생각했다고. 조급함과 불안함을 내려놓았더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산하에 유서깊은 발레학교가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온 무용수보다는 이 학교 출신 무용수에게 기회가 좀 더 열려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예은이 발탁된 건 무용계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뉴스였다. 모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이예은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한예종 산하 영재원에 몸 담았을 때 김선희 원장은 열살 이예은에게 "학생처럼 추지 말고 춤은 항상 프로처럼 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말이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싹 접었죠. 선생님들의 조언 덕분에 학생이니까 이 정도면 된다는 말에 타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한계를 더 뛰어넘으려고 어린 나이부터 노력했어요."
이예은은 선화예중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한예종으로 갔다. 바로 대학생이 된 셈이다. 그는 "발레 무용수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하루라도 빨리 프로로 뛰고 싶었다"며 "학창시절의 추억과 맞바꾼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프로 무대에 대한 강한 열망 덕에 4년의 대학과정도 3년만에 끝냈다. 그리고 첫 발레단 시험을 본게 세계 최고 실력을 갖춘 파리오페라발레단이었던 것. 그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마음에 두게 된 이유는 첫 공개오디션에 3위에 들면서부터다. 이후 준단원으로서 자격이 주어져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발레단 경험을 했다. "확신을 하게됐어요. 발레단의 조직 문화도 좋고, 공연할 때마다 서로 도우려는 스태프와 무용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열렬한 호응, 우아한 차림새 등 매너를 갖춘 관객들 또한 감동이었죠. 이곳에서라면 정말 행복하게 춤을 추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입단을 다짐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무용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객석에서 제 동작을 봤을 때 편안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흐름도 부드럽고요. 물 흐르듯이 동작을 이어가는게 저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우아하게 느껴지는 발레의 동작은, 매순간 중력을 거슬러야만 완성된다. 신체를 절제하는 능력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가벼운 움직임은 뼈를 깎는 훈련끝에 만들어지는 결과다. 그래서 발레가 냉정하고 잔인한 예술이란 말도 있다. 어느 한순간 무용수가 게으름을 피우면 "퇴화했다"고 뼈아픈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입단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는 한국에 와서 '라 실피드'라는 고전 발레 작품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지난 7월 중순 경기도 분당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발레스타즈> 갈라 공연 무대에서였다. 그는 작품 속 공기의 요정이 돼 하늘하늘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누볐다. 이날 공연의 첫 무대부터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보여줘 관객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역할을 했다. 이예은은 8월 말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건너가 바로 2024-2025년 새 시즌에 투입된다.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의 <돈키호테>라고 했다. "누레예프의 작품은 발동작이 아주 화려하고 복잡해서 매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용수의 도전 의식이 불타게 만들기도 해요. 준단원 시절 그의 <돈키호테>를 경험했는데 전막 내내 주역 무용수가 날고 뛰는 모습이 나오는데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는 동양인 최초로 수석무용수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있다. 그는 발레단 선배로서 이예은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박세은이) 어떤 타이즈가 좋은지, 슈즈의 끈 묶음은 어떻게 할지 세세하게 짚어줬어요. 또 동작에 대한 조언도 많았는데요, 발의 포지션이나 턴아웃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상체도 객석을 향해 앞쪽으로 좀 더 내밀면서 움직이라는 등 뼈와 살이 되는 조언들이 있었어요. 입단 후에도 계속 새겨야할 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나도 그는 20대다. 하지만 프로무용수로서 쌓은 경험은 그 누구보다 깊어질 것이다. 그는 어떤 발레리나가 되고 싶을까?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수 있게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고 살고 있는데요. 점점 발전하는 무용수면 좋겠어요." 1등치고 너무 겸손한 대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대표할 수 있는 발레리나하면 이예은을 떠올리는 날이 와 있지 않을까요(웃음)."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