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 13일 오후 4시 33분

[최석철의 딜 막전막후] 공모가 거품 키우는 IPO 주관사들
장외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하려면 주관 증권사를 반드시 선정해야 한다. 주관사 제안요청서(RFP)가 보내지는 순간, 여의도에선 피 말리는 경쟁이 시작된다. 일명 ‘주관사 콘테스트’다. 기업 최고경영진 앞에서 각 증권사 IPO본부장이 프레젠테이션(PT)에 나선다. 대어급 IPO 기업의 PT에는 증권사 사장이 참여하기도 한다. PT의 핵심은 IPO 예정 기업의 기업가치 산정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주관사 입찰을 따내기 위해 공수표를 남발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주관사 과열 경쟁 과정에서 제시된 기업가치가 일종의 하한선처럼 여겨지고 있다. 실제 IPO 과정에서 고평가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1년간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은 스타트업만 10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류 브랜드 회사 피스피스스튜디오는 ‘주관사 콘테스트’에서 1조원대 가치로 평가됐다. 화장품 브랜드 회사 비나우에 2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제시한 곳도 있다. 다른 증권사가 제시한 기업가치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공모주 몸값 뻥튀기의 시발점

가파른 성장세를 타는 유망 기업인 건 맞지만 실제 기업가치를 놓고 여의도에서도 갑론을박이다. 피스피스스튜디오 몸값 1조원은 지난해 순이익(207억원)에 주가수익비율(PER) 25배를 적용한 수준이다. 국내 의류 브랜드사 평균 PER은 10배가 넘지 않는다. 비나우 역시 2조원의 기업가치는 국내 화장품 기업 평균 PER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적용해야 나온다.
[최석철의 딜 막전막후] 공모가 거품 키우는 IPO 주관사들
증권사의 ‘몸값’ 뻥튀기 평가는 기업 최고경영진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전략이다. 국내 IPO 시장 특성상 상장 청사진으로는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평가 가격이 기업과 주요 주주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전에 기업이 희망하는 기업가치를 파악한 뒤 그보다 높은 가치를 제시하는 게 일종의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현재 기업 상황에서 달성하긴 무리인 기업가치라는 건 알지만, 그 숫자 미만으로 제시하면 해당 기업의 성장성을 낮게 본다는 인식을 피하기 어렵다.

주관사 평판 기준 바꿔야

해당 기업에 투자한 재무적투자자(FI)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도 있다. 당장 돈을 못 버는 적자 기업이어도 조단위 기업가치를 제시하는 사례가 흔하다. 실적보다는 성장성을 앞세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선례가 있는 만큼 기업은 물론 FI의 눈높이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 FI가 투자할 당시와 시장 상황이 달라졌어도 FI 투자 단가는 여전히 기준점으로 통용된다. 이를 맞추기 위해 일부 주관사 후보가 기업이 제시한 실적 전망을 무리하게 높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주관사 경쟁 단계에서 기업가치가 부풀려지는 만큼 이를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업도 있다. 실제 IPO에 나설 땐 그보다 살짝 낮은 기업가치를 내놓고 ‘보수적 기업가치’를 제시했다며 투자자를 현혹한다.

주관사 선정과 외부 투자 유치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다. 주관사 경쟁 과정에서 제시된 기업가치 및 그 근거를 갖고 투자사에 투자를 요청하는 식이다. 주관사가 이 정도 가격을 제시했으니 이보다 낮은 가격에 투자하면 조만간 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득한다.

국내 IPO 시장에서 주관사 간 평판이 별반 차이 나지 않아 벌어지는 비극이다. 얼마나 큰 IPO 딜을, 얼마나 흥행시켰는가에 초점이 맞춰질 뿐 상장 이후 주가 흐름에 대한 평가 등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시장에서 주관사별 역량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빅딜’을 얼마나 해왔는지가 아니라 앵커 투자자를 확보할 역량이 있는지, 수요예측의 완성도는 어땠는지, 실제 공모주의 수익률은 어땠는지 등으로 주관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