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공익재단 관련 규제가 기부문화 확산을 막는다는 하소연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예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의 한국 순위는 2013년 45위에서 2023년 79위로 추락했다. 잘사는 나라가 될수록 기부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한국은 거꾸로다. 우회적으로 기업을 지배하거나 편법으로 승계하는 수단이 아니냐며 공익재단을 규제로 꽁꽁 묶어놓은 탓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88개 그룹 소속 219개 공익재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 이상이 자신들의 국가·사회적 기여가 다른 선진국 재단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엄격하고 중복적인 규제 때문”이라는 응답이 54%에 달했다.

국내 기업 공익재단은 상속·증여세법의 주식 면세 한도와 공정거래법의 공익재단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금지라는 ‘이중 족쇄’에 묶여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이 의결권 있는 주식을 출연받을 땐 5%까지만 상속·증여세가 면제되고, 초과분에 대해선 최고 60%의 초고율 세금이 부과된다. 의결권 행사 역시 원칙 금지에 인수합병(M&A)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나마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공익재단들은 출연 주식에 대한 면세 한도부터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소 15%까지는 면세돼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미국이 20%, 일본이 50%까지 세금을 면제하고 독일 영국 등 유럽연합(EU) 국가엔 아예 이런 한도가 없음을 감안하면 무리한 희망도 아니다.

대부분 나라가 공익재단을 통해 가업을 승계하고 사회 공헌도 늘리는 기업들을 격려하면 격려했지, 우리처럼 우회 지배, 편법 승계의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기부를 막는 걸림돌을 모두 치워주면 좋겠지만 최소한 ‘5% 족쇄’라도 우선 풀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