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13일 서울 방배동 알라딘 중고 서점 이수역점 ‘신간 코너’에는 출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책 수십 권이 꽂혀 있었다. 시민 이모 씨(31)는 “신간 다섯 권을 4만5000원에 구매했다”며 “베스트셀러나 절판된 책도 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독서 인구가 줄면서 서점도 급감하는 가운데 중고 서점에만 손님이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책을 사고파는 장점이 부각된 데다 도서정가제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서점 ‘삼중고’ 겪는데…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국의 서점은 2484개로 2022년 2528개 대비 44개 감소했다. 전국 서점은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줄어들고 있다. 독서 인구 감소 속에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기존 신간 위주 서점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말 기준 온·오프라인 중고 서점은 417개로 오히려 느는 추세다. 2010년 전후로 생겨난 ‘알라딘’ ‘YES24’ ‘개똥이네’ 등 기업형 중고 서점이 최근 2~3년 새 급속도로 수를 불리고 있다.

신간을 파는 일반 서점은 책값 인상과 늘어난 임차료 부담, 학령인구 감소 등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하는 성인 독서율은 2011년 73.7%에서 지난해 46.3%로 급감했다. 성인 10명 중 절반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나마 남은 독자들은 알라딘을 필두로 한 기업형 중고 서점에 빼앗기고 있다. 중고 서점은 가진 책을 손상 상태에 따른 할인율을 적용해 쉽게 팔 수 있다. 판매 시에는 정가 대비 평균 30~40%의 할인율이 적용되고, 서점은 매입가와 판매가의 차이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알라딘 관계자는 “2011년 첫 오프라인 매장을 시작으로 55개까지 오프라인 매장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중고 서점에선 참고서와 스테디셀러가 꾸준히 팔리고 있다.

“굳이 새 책 필요 없다”는 고객들


중고 서점은 고물가 여파로 책값이 크게 올라 일반 서점의 신간 서적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이 주로 찾는다. ‘짠돌이 MZ’와 독서를 즐기는 50대 이상 중년층이 주요 고객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된 도서 평균 가격은 1만8633원으로 2022년(1만7869원)보다 4.3% 올랐다.

도서정가제도 중고 서점 활황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분석된다. 신간 서점에선 책값 할인이 불가능하지만, 중고 서점에선 책 매입 비용에 따라 얼마든지 정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책을 팔 수 있어서다. 중고 서점엔 주로 주머니가 가벼운 20대, 50대 다독가들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 임정훈 씨(23)는 “자취생이라 다 읽은 책은 그때그때 파는 편”이라며 “오래된 책은 발매 가격의 80~90% 수준으로 저렴해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고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된 점도 중고 서점이 인기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1인 가구 보편화에 따른 주택 슬림화로 ‘책은 소장한다’는 가치가 과거에 비해 옅어졌고, 책을 내다 파는 걸 꺼리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품 상태보다는 콘텐츠 가치가 중요해졌고, 독자들이 ‘굳이 새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업계에선 세를 키우는 중고 서점이 신간 출간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2017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기업형 중고 서점 때문에 발생하는 신간 서적의 매출 손실을 7.6%로 추산했고, 중고 서점이 더 늘어난 현재는 더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최근 신간이 1쇄부터 온전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판매되지 못하고, 바로 중고 서점에 깔리는 현상도 나타나는데 이는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