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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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놓친 시장이 하나 있다. 픽업트럭이다. 1990년 포니2 픽업을 단종한 지 31년 만인 2021년, 현대차는 싼타크루즈로 재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싼타크루즈의 지난해 미국 픽업트럭 판매 랭킹은 12위(3만6000여 대)에 그쳤다.

절치부심한 현대차·기아가 내놓은 승부수는 힘세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연장형 전기 픽업트럭’이다. 이르면 2028년부터 미국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준대형 세단(155만 대)보다 두배 가량 많은 285만 대나 팔린 큰 시장인 데다 수익성도 높은 픽업트럭을 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는 지난달 말부터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사진) 분해·분석작업에 들어갔다. 오는 28일까지 분석을 완료한 뒤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EREV) 연구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xEV TF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현대차는 EREV 픽업트럭(코드명 TE)을 2029년부터, 기아는 EREV 픽업트럭(코드명 TV)을 2028년부터 각각 연간 5만 대 이상 생산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는 4000㎏이 넘는 무거운 짐을 끌면서도 500㎞ 이상 달릴 수 있는 힘과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픽업트럭을 순수 전기차로 만들어 2026년 출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캐즘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면서 내부 기류가 바뀌었다. 지난 5월 열린 베이징모터쇼에서 중국 전기차 회사들이 EREV 기술을 적용한 차량을 대거 선보인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가 픽업트럭 개발에 공을 들이는 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픽업트럭이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라인업이기 때문이다. 북미 시장에서 픽업트럭은 280만~300만 대가량 판매된다. 세단 판매량의 두 배 이상이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잘 팔리는 픽업트럭 3개 모델은 포드 F시리즈와 쉐보레 실버라도, 닷지 램 픽업이다.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3개 모델 판매량은 지난해 170만 대가 넘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연간 판매한 차량 모두를 합한 것(165만 대)보다 많은 수준이다.

픽업트럭 수익도 세단보다 많다. 제너럴모터스(GM)가 과거 투자자에게 공개한 대형 픽업트럭 한 대당 수익은 최소 1만7000달러(약 2328만원)로 중대형 세단 판매 수익의 두 배가 넘는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