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혁신' 대신 노조깃발 나부끼는 게임업계
“게임업계는 노사 갈등보다는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코로나19 동안 ‘반짝 특수’를 누린 게임업계가 최근 노사 간 대립 위기에 직면하자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이 13일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놓았다. 게임업계 노조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넷마블 노사가 본격적인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대한 평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노조 넷마블지회는 전날 서울 구로구 지타워 넷마블 사옥 앞에서 첫 집회를 열고 “3개월째 사측의 회피로 상견례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측에 성실한 교섭을 촉구했다. 이어 “회사가 교섭 장소와 시간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는 교섭을 회피하는 위법행위”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시위는 본격적인 게임업계 노사 갈등의 ‘신호탄’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5월 넷마블 노조 설립으로 국내 주요 게임사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에 모두 노조가 들어섰다. 2018년 넥슨을 시작으로 스마일게이트, 웹젠, 엔씨소프트에 이어 넷마블에까지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들어섰다.

이날 진행된 시위에서는 스마일게이트와 엔씨소프트 노조위원장이 연이어 연대 성명문을 발표했다. 작년 12월 이들 노조가 공언한 ‘정보기술(IT)업계 임금협상 연대’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문제는 이런 노사 갈등이 한국 게임업계의 ‘암울한 전망’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위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 모델에 매진해 이익을 내온 한국 게임업계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평가도 냉정하다.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의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해 온 엔씨소프트 주가는 1년 새 30% 급락했다.

위기일수록 노사는 상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익이 났으니 뭐든 해달라”는 구태를 답습하기보다 회사의 혁신을 촉구하는 노조의 모습도 필요하다. ‘쉬운 길’을 택해 영업이익을 낸 회사 경영진을 꼬집는 노조 말이다.

올 2분기 3321억원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낸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는 무료 게임 일색이던 시장에서 ‘유료 출시’라는 도전으로 일군 성과다. 생소한 장르인 ‘배틀로얄’ 방식을 택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초창기 게임 업계가 걸어온 ‘가시밭길’을 모두가 걸을 순 없지만 게임 업계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어느 때보다 노사가 뭉쳐 절실하게 도전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30대 구성원들이 주류인 IT업계 노조는 다르길 기대해본다. 발전 없이 정체된 ‘한국 게임호’가 침몰하면 선장만 물에 빠지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노사 양측 모두 게임업계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대화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