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수 김호중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변성현 기자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수 김호중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변성현 기자
음주 뺑소니 혐의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가수 김호중(32)의 팬덤이 그의 사건으로 드러난 음주운전 관련 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집단 항의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호중 방지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들에게 우르르 몰려가 법안에 반대한다고 성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특정 정치인의 범법 행위마저 맹목적으로 두둔하는 정치 팬덤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일명 술 타기 수법으로 음주 측정을 방해한 김호중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음주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잠재적 살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후 개정안 발의 소식을 알린 박 의원의 블로그에는 이날 기준 1400개가 넘는 항의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의 김호중 방지법 발의 관련 블로그 게시물에 달린 댓글. / 사진=네이버 블로그 캡처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의 김호중 방지법 발의 관련 블로그 게시물에 달린 댓글. / 사진=네이버 블로그 캡처
대부분 김호중의 팬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길 창창한 청년의 한 번 실수를 이렇게까지 난도질해야겠나", "국회의원 탄핵소추가 이뤄져야 한다", "인격 침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인격 모독하느냐", "명백한 인격 살인이다"라는 반응이었다. 개정안에 자신들이 따르는 가수의 이름을 덧붙인 데 대해 특히 격앙된 반응이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해 인권 침해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호중 방지법'을 발의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블로그도 상황이 비슷했다. 댓글 수는 이날 기준 약 250개로 박 의원보다는 적었지만,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전도유망한 한 사람을 매장시키려고 혈안이 되나", "김호중 이름 내려 달라", "의원님은 김호중 가수가 걸어온 길을 아시냐", "이름 알리고 싶어 이런 짓거리를 하나",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였나, 무슨 큰일을 냈나" 등이었다.
김호중이 팬카페에 올린 입장문에 달렸던 팬들의 댓글. / 사진=네이버 카페 캡처
김호중이 팬카페에 올린 입장문에 달렸던 팬들의 댓글. / 사진=네이버 카페 캡처
이는 비(非)정치 강성 팬덤이 입법권에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한 유례 없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그룹 방탄소년단(BTS) 팬덤이 병역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불법 행위를 옹호하고 있는 김호중 팬덤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했다. 김호중의 팬덤은 관련 기사를 작성한 일부 기자들에게도 "교통사고 이후 사고 장소 이탈이 대한민국에서 2024년 5월 김호중 이전에는 단 건도 없었냐"는 내용의 메일 테러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여야가 강성 정치 팬덤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김호중 팬덤의 이런 모습에 기시감이 든다는 평가도 많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김두관 당 대표 후보를 향해 욕설 섞인 야유를 퍼붓는 것,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에게 악플 테러를 가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예계와 같은 예술 분야는 감성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팬덤이라는 감성적 존재가 판치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해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연예인 팬덤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정치판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은 팬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제도적 신뢰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준다. 팬덤은 정치를 감성화해 민주주의를 망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