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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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A군(18)은 인기 온라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롤)’를 하다가 상대편인 B씨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화가 난 A군이 욕설로 맞받아쳤지만, B씨는 곧바로 고소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A군의 욕설엔 성적 내용이 담겨있는 게 문제였다. 이후 B씨는 '고소를 하지 않을 테니 합의금 300만원을 달라'는 문자 폭탄을 한 달 째 보내고 있다. A군은 “혹여 입시나 먼 미래 취업에 문제가 생길까 봐 합의금을 주고 끝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성적 욕설을 했다가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고소를 당하는 10대~20대 남성들이 늘고 있다. 관련 처벌 규정이 최근 강화되면서 처벌 가능성을 악용해 합의금을 뜯어내는 '꾼'이 등장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매체 이용 음란물(통매음) 사건 발생 건수는 8004건으로 2019년 1437건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통매음 사건은 2020년 2047건, 2021년 5067건, 2022년 1만563건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로 통매음 고소가 들어오는 때도 많다”면서 “특히 청소년들이 게임상 성적 혐오 표현을 해 신고당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성적 욕망을 만족하게 할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등을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모욕죄와 달리 특정성과 공연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 처벌될 가능성도 큰 편이다. 통매음 사건 상당수는 온라인 게임상에서 성적인 욕설을 했다가 고소·고발로 이어진 사례다.

통매음 사건은 인기 온라인 게임 롤을 중심으로 처벌 사례가 늘면서 일반인에게 조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이 게임에서 채팅으로 성희롱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사회복무요원 C씨(24)가 벌금 2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법원은 24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당시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함부로 음담패설을 했다가는 성범죄자가 될 수 있다며 ‘롤매음’, ‘겜메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범죄기록이 남지 않기를 바라 합의를 원하는 청소년을 노린 일명 ‘통매음 헌터’들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협동 게임을 일부러 엉망으로 만든 뒤 상대방을 자극해 성적인 욕설을 끌어내는 수법을 이용한다.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이들은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 홈페이지 고소장 접수사진 보내는 식으로 상대를 협박하고 상대가 돈을 보내면 접수 취소를 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또 '고소를 취하해주겠다'면서 상대가 실제 돈을 지불하면 추가적인 금전을 요구받는 사례도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관련법상 통매음은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N번방 사건' 이후 기존 500만원 처벌 규정에서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높은 벌금을 내기보다 소위 '통매음 헌터'들에게 합의금을 주는 게 낫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 여파로 통매음 불송치 건수도 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고소·고발이 난무하면서 최근 재판부가 통매음죄 성립 요건을 엄격히 보기 시작했고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통매음 관련 경찰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송치 처분을 내린 사례는 지난 2020년 640건에서 2021년 1236건, 2022년엔 4011건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롤 등의 상대방이 있는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의 험한 욕설채팅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