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커머스 공세…CJ·쿠팡, 실익없는 '제판 전쟁' 마침표
2022년 11월 쿠팡과 CJ제일제당은 거래를 중단한 뒤 서로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쿠팡은 CJ제일제당의 ‘햇반’ 대신 오뚜기, 하림 등의 즉석밥 발주량을 늘리고 할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활필수재로 자리 잡은 즉석밥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 햇반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CJ제일제당도 마찬가지다. 쿠팡의 ‘로켓배송’(새벽·익일배송)에서 빠진 뒤 네이버와 익일배송 서비스, 컬리와는 상품 공동 개발에 나섰다. 올 3월부터는 중국 e커머스인 알리익스프레스에 입점해 대규모 할인전까지 열었다. 하지만 1400만 명의 충성고객(와우 회원)을 보유한 쿠팡에서 매출이 빠지면서 성장세가 둔화했다.

두 회사가 1년8개월에 걸친 ‘제(제조)·판(판매) 전쟁’을 끝내고 거래를 완전 정상화하기로 한 이유다. 각각 유통·식품업계 1위인 만큼 협력을 통한 매출 성장이 필요했다. 일각에선 “양사가 명분 없는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성장세만 더뎌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쿠팡 ‘거래 재개’ 손짓에 CJ 화답

C커머스 공세…CJ·쿠팡, 실익없는 '제판 전쟁' 마침표
14일 식품·유통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과 쿠팡은 갈등의 핵심 요인이던 ‘납품 단가’와 ‘공급 물량’에서 한 발씩 양보하면서 협상 타결을 이뤘다. 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은 주요 제품의 물량을 쿠팡에 더 주고, 쿠팡은 CJ제일제당이 원하는 납품가에 맞춰주는 식으로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쿠팡이 협상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테무 등 중국 e커머스의 초저가 공세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상품력을 갖춘 CJ제일제당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쿠팡은 이달 초 와우 멤버십 월회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1% 인상하면서 소비자를 묶어둘 제품 라인업 강화가 절실하다. CJ제일제당은 햇반뿐만 아니라 ‘비비고’ ‘해찬들’ ‘백설’ 등 냉장·신선식품, 가공·즉석식품, 양념류 등 모든 카테고리를 갖춘 국내 1위 식품 기업이다.

CJ제일제당에도 쿠팡의 빈자리가 크다. CJ제일제당의 국내외 햇반 매출은 쿠팡에 납품을 중단한 직후인 지난해 8503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였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22년(18.5%)의 4분의 1 수준인 4.3%에 그쳤다. 작년 같은 추세라면 CJ제일제당이 애초 목표로 한 ‘2025년 매출 1조원 달성’은 쉽지 않다는 평가다.

○“성장하려면 손잡아야” 공감대

CJ제일제당의 식품사업 매출 증가 둔화는 쿠팡 로켓배송 중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네이버, 신세계그룹, 컬리 등과 손잡고 온라인 판매망을 확대했지만 탈(脫)쿠팡에 따른 매출 감소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CJ제일제당과 쿠팡이 틀어지기 전 햇반 연간 매출의 10% 수준인 900억~1000억원가량이 쿠팡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CJ제일제당 자사 몰인 CJ더마켓에서 올린 매출(238억원)의 세 배가 넘는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간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쿠팡 로켓배송을 통한 햇반 판매가 다른 온라인 유통 채널보다 수익성이 높다”고 했다.

이번 갈등 해소로 수년간 이어진 쿠팡발(發) ‘제·판 전쟁’이 일단락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쿠팡은 생활용품업계 1위인 LG생활건강과도 납품가를 두고 4년9개월간 갈등을 빚다가 올초 거래를 다시 텄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소매업황 악화 속에서 제조·판매업체가 협력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선아/하헌형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