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타협의 정치와 대결의 정치
바이킹이라고 하면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도끼를 휘두르며 살육을 서슴지 않는 잔인한 전사를 떠올리게 된다. 유럽인들은 유럽과 지중해 연안을 파괴하고 약탈한 그들을 피에 굶주린 야만인 또는 ‘신의 진노’라고 불렀다. 그러나 바이킹이 일찍부터 선진 정치문화를 발전시켜 왔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투표로 결정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930년 세계 최초의 의회가 설립됐다. 북구 5개국(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은 오늘날 매우 평등하고 타협적인 정치문화를 자랑한다.

노르딕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한다. 의사결정은 여야 정치인, 정부 대표, 이익단체, 전문가 등 이해당사자 간 토론과 협상을 거쳐 컨센서스로 이뤄진다. 이념보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타협을 도모하는데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가 타협을 촉진하는 주요 요소다. 타협문화는 정치적 편의와 전략을 넘어 가치 규범으로 확립됐다.

타협문화는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르딕 5개국은 지난 10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분리, 올란드섬의 핀란드 귀속, 아이슬란드 독립, 그린란드 자치권 확대 등의 현안이 민주적,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또한 국제개발 협력, 환경, 인권, 법치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선도하고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북구의 정치문화를 소환한 이유는 총체적 난국에 처한 우리의 정치 현실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극단의 대결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 제22대 국회 개원식은 열리지 못했다. 다수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 공전과 파행적 운영은 예사다.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해야 할 정치권이 갈등 ‘조정자’가 아니라 ‘조장자’로 비난받고 있다.

권력 획득이 목표인 정치 속성상 정쟁은 불가피하나 우리의 대결 정치는 심각하다. 정서적 양극화로까지 진화한 정치 양극화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양극화를 심화한다. 소셜미디어는 거짓과 분노를 확산해 혐오와 갈등을 부추긴다. ‘정치의 사법화’는 필연적으로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야기한다. 소선거구제, 양당제에서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정치세력 간 타협 공간은 좁고 대결이 일상화, 영속화하고 있다. “정치는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닌 대안을 찾는 게임”이라는 것은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정치가 타협을 통해 절충안을 찾는 예술임을 설파한 탁견이다. 대화와 타협의 기본원리가 무시되면 민주정은 작동이 멈춘다.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공공의제에 대한 정책 마련은 불가능해진다. 북구의 타협정치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한국이 북구의 정치문화를 답습할 수는 없다. 다만, 의식과 제도 몇 가지는 참고할 만하다. 우선, 북구에서 정적은 궤멸할 적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다.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협력해야 했던 역사와 다당제하에서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 점도 타협을 진작한다. 갈등 조정을 위한 기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북구에서는 초당적 위원회, 공청회, 실무그룹 등 제3자 단체가 사회 주체 간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대의민주주의의 미래는 결국 시민의 신념과 선택에 달려 있다. 북구 시민의 민주적 과정 적극 참여가 타협을 가능하게 한다. ‘소수 의견 존중과 다수결주의 수용’이라는 우리 국회법의 기본정신도 타협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다. 특히 온건·중도층 시민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게임 규칙의 준수 여부를 감시, 심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