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리은행, 오명 벗을 마지막 기회
“워리(worry)은행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네요.” 연이어 터진 금융사고를 지켜본 한 우리은행 직원의 얘기다. 워리은행은 우리은행을 칭하는 업계 은어다. ‘우리(We)’라는 대명사를 사명으로 쓰는 탓에 혼란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은행권에선 “워리”로 부르곤 했다. 최근엔 ‘걱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worry까지 덧붙여졌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때마다 워리은행이란 별칭이 불리면서다.

최근 발생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정대출은 우리은행 고객들의 걱정이 정점에 이르게 된 사건이다. 회장의 처남이란 이유로 가치가 없는 담보나 여력이 없는 보증인을 내세웠는데도 616억원을 선뜻 빌려줬다. 손 전 회장 취임 전엔 내준 대출이 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고금리 여파로 대출 문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사건을 지켜본 우리은행 고객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사태가 커지기 전 여러 징후가 있었다. 손 전 회장의 처남인 김모씨는 대놓고 지주 회장을 앞세워 호가호위했다. ‘우리은행 명예지점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 요란스러운 그의 행보 탓에 사내에선 김씨의 존재가 알음알음 퍼졌다. 실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는 내부 직원이 적지 않았다.

김씨에게 부당 대출을 내준 혐의로 고소된 임모 본부장도 ‘사내 문제아’로 꼽혀왔다. 우리은행 한 고위 임원은 “원래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라며 “과거 징계를 받은 이력도 있다”고 전했다. 임 본부장을 아는 직원들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평을 내놨다.

곳곳에서 울린 경고음을 외면한 대가는 혹독하다. 연초부터 은행장이 직접 나서 “올해 이익 1위 은행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사기 진작에 나섰지만 잇단 사고에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심 차게 출범한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은행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도 시작부터 김이 샜다. 은행권을 덮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서 비껴가며 쌓인 신뢰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좌절하며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다. 신뢰를 잃은 고객들이 떠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등 고객들이 택할 대안은 넘쳐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내놓은 땜질 처방과 돌려막기 인사로는 고객들의 걱정을 덜어낼 수 없다.

진단은 끝났다. 부당한 지시와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일부 직원의 기회주의적 처신,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 등 드러난 모든 문제점을 도려내야 한다. 워리은행이란 오명을 벗을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