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안정화 효과를 극대화할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해 기금 고갈 시점(2055년 예상)을 최대 8년 늦추는 수준에 머문 21대 국회의 모수개혁 추진을 넘어 국민연금 제도의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보험료율은 앞서 여야가 합의한 13% 수준으로 높이되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인상 속도는 차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대수명, 출산율 등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지급액 자동 조절장치' 만들고…보험료율은 13%로 인상 유력

재정 자동안정화장치로 구조개혁

15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 발표할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 “핵심은 세대 간 보험료 부담에 차이를 두는 것과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보험료율 인상폭과 소득대체율 수준은 앞서 국회에서 논의한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세대별 차등 부담,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를 전제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기금 고갈 시기를 30년까지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까지 높이는 데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선 43%(여당)와 44%(야당) 사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이 같은 연금 개혁안은 재정안정화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한 ‘더 내고 더 받는’ 1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은 기금 고갈 시점을 2062년으로 7년 늦추고, ‘더 내고 그대로 받는’ 2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은 2063년으로 8년 늦춘다. 시민대표단이 가장 많이 선택한 1안은 오히려 향후 7년간 누적적자를 702조원이나 늘려 ‘개악’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넘어 연금제도의 틀까지 바꾸는 구조개혁에 나선 이유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자동안정화장치는 임금과 물가 상승에 따라 늘어나는 연금을 출생아 감소, 기대수명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를 반영해 조정하는 장치다. 재정안정 효과가 커 한국보다 먼저 기금 고갈 문제에 맞닥뜨린 일본을 비롯해 독일 핀란드 등 주요 선진국이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국이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거시경제 슬라이드’로 불리는 자동안정화장치를 통해 인구 감소, 평균 수명 연장 등에 따른 연금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핀란드는 생애 총급여액은 고정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급여액을 조정한다.

정부 관계자는 “모수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선진국처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로 국민연금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 보험료 부담 줄인다

보험료율은 앞서 국회가 합의한 13% 수준으로 높이되 세대별로 차등을 둘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작년 10월 발표한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해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그룹에 따라 차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보험료를 낼 시간이 많이 남은 청년 세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만큼 청년층의 인상폭은 작게, 중장년층은 높게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대별 차등 적용은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안이다.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현행 40%(2028년 기준)로 유지하거나 인상폭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대신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월 33만원인 기초연금 지급액을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4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정부가 설계한 개혁안을 두고 일부 반발도 예상된다. 자동안정화장치가 시행되면 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소득보장성을 중시하는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연금 개혁은 법률 개정 사안이어서 국회 합의를 거쳐야 한다. 중장년층 부담이 커지는 보험료 차등 인상도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