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첨단산업 경쟁력의 '복병' 글로벌 최저한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이끄는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려 활로를 모색해왔다. 인프라 비용 부담, 수도권 규제,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국내 투자 여건의 한계를 절감하고 해외 주요국의 전폭적인 지원정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되는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으로 향후 관련 기업의 투자 위축과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세원잠식방지모델 규정(필라2)에 따라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과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도입됐다. 매출액 일정 규모 이상인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들이 특정 국가에서 최저한세인 15%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경우 그 차액을 모기업 소재국에 납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40여 개 참여국 중 가장 먼저 법제화해 올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기업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미국에 투자한 전기차 배터리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대규모 보조금과 각종 세제 혜택에 힘입어 최근 흑자로 전환됐다. 그러나 순이익이 글로벌 최저한세로 상쇄될 경우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 현지뿐 아니라 국내 관계사들의 투자까지 위축시킬 것이다.

기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해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시행 중인 현금환급제도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은 현행법상 기업이 이익이 날 때에만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초기엔 대부분 이익이 나지 않아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현금환급제도는 이런 기업을 대상으로 공제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해당 환급액이 소득에 산입돼 유효세율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줄고 모기업이 내야 할 차액 역시 감소하게 되므로 기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첨단산업에 대해서는 투자 초반에 감가상각을 크게 계상해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설비투자 가속상각제 적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액공제 방안보다 효과적인 것은 투자와 생산에 대한 보조금이다. EU 63조원, 미국 54조원, 일본 8조원 등 막대한 보조금과 조세 지원으로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주요국에 비해 한국은 반도체 보조금이 아예 없다. 전기차 배터리 지원 규모는 미국의 4%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글로벌 최저한세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보조금 투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첨단산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 안보, 세수 확보 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고 국가 번영을 가져오는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축이다. 주요국의 첨단산업 지원 대항전 속에서 정부의 지원 없이 기업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경쟁력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 경기장 밖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