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곁들인 메인 정찬 ' 카오 갱'
카레를 곁들인 메인 정찬 ' 카오 갱'
태국 방콕의 신뢰할 만한 ‘푸디’ 친구들에게서 요즘 공통으로 듣는 추천 레스토랑 이름은 와나육(WANA YOOK)이다. 2021년 4월 라마 7세 시대 가옥을 리모델링한 멋진 공간에 꾸며진 레스토랑 와나육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다. 저돌적인 에너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태국 전통 식문화인 카오 갱(Khao Gaeng·밥과 카레의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와나육의 정체성으로 삼은 젊은 셰프 찰리 카데르는 태국에서 나고 자란 인도인 셰프다. 찰리 셰프는 미국에서 요리를 공부한 후 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기 전까지 방콕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수석셰프로 6년 동안 근무했다. 자연스레 양식 베이스의 스킬에서 프렌치 터치를 덧입힌 자신만의 색이 만들어졌다. 찰리 셰프는 미쉐린 빕 구르망을 받은 ‘100 Mahaseth’와 원스타를 받은 와나육 외에도 다양한 크고 작은 외식 사업을 펼치고 있는 젊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태국 전역 맛볼 수 있는 12가지 메뉴

와나육은 태국 남쪽의 대표적 식문화인 카오 갱을 메인 정찬으로 선보이며 태국 내 다양한 지역의 쌀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각각 다른 조리법과 테크닉으로 그 특별한 맛, 향을 살려 12가지 메뉴를 코스로 구성해 선보인다. 모던 코리안 다이닝을 구현하는 한국 셰프가 장 문화를 연구하고 자신들의 음식에 어찌 맛을 덧입힐지 고민하는 부분과 비슷하다.

특히 인디언 베이스인 찰리 셰프는 쌀과 어울리는 조합으로 카레를 곁들이는 요리들을 자주 보여준다. 특히 생선 요리와 함께 카레 풍미를 덧입힌 소스를 배치하는데, 태국은 늘 풍성한 식재료에서 그 식문화가 너른 카테고리로 발전하는 듯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민물 생선과 새우 페이스트, 피시 소스 또는 코코넛 밀크의 조합은 늘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하는 버튼으로 작용한다.

또한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장치를 편안하게 세팅하는 것도 특징이다. 와나육에서는 내추럴 와인과 칵테일 등의 페어링을 중요하게 생각해 곁들이고 있다. 식사하기 전 늘 한 잔의 칵테일로 입맛을 끌어올리는 관습은 무더운 기후에 에너지가 많이 빼앗긴 컨디션을 고려하는 자연스러운 패턴이다.

와나육의 코스메뉴 중 가장 인상적이고 정체성을 잘 담고 있는 네 가지 메뉴를 소개한다. 양식 코스에서 가장 첫 순서로 나오는 아뮤즈 부슈와 같은 의미의 킨 런(Kin Len)부터 재미있게 표현한 비둘기 요리 갱 쿠아(Gaeng Kua), 메인 정찬으로 준비되는 카오 갱, 달콤한 태국 과일 토디팜으로 만든 시그니처 디저트까지 만나보자.

꼭 먹어야 할 베스트 메뉴 4가지

돼지고기를 구워낸 ‘무 양 트랑’
돼지고기를 구워낸 ‘무 양 트랑’
(1) 킨 런-로바, 무 양 트랑&사테

킨 런이란 이름을 풀이해 보면 킨(Kin)은 ‘먹다’라는 동사며 런(Len)은 ‘즐기다’를 뜻한다. 그래서 아뮤즈 부슈 또는 스낵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로바(Loba)는 한입 크기의 마카롱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섯 가지 향신료를 사용해 튀긴 내장을 끓여 만든 요리로 태국 남부지방인 호키안에서 영감을 받았다. 속에는 달콤하고 맛있는 소스를 곁들인 돼지 귀가 들어 있다. 간장과 타마린느, 칠리로 만든 달콤한 소스 터치가 더해졌다.

남부식 고기튀김 ‘사테’
남부식 고기튀김 ‘사테’
무 양 트랑(Moo Yang Trang)은 역시 태국 남부 끄라비와 가까운 뜨랑 지역의 자랑스러운 음식으로 다섯 가지 향신료 양념에 소금과 설탕을 더해 돼지고기를 구워낸 음식이다. 특히 껍질 부분을 아주 크리스피하게 굽는 것으로 유명하다. 태국 남부에서는 식사와 식사 사이, 간식으로 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여기에 함께 나오는 사테(Satay), 남부식으로 구운 고기 튀김 살라파오 번, 태국 오이 샐러드와 함께 즐거운 밸런스로 완성했다.

(2) 비둘기 요리 ‘갱 쿠아’

비둘기 요리 ‘갱 쿠아’
비둘기 요리 ‘갱 쿠아’
비둘기는 가슴과 다리를 주로 구워 준비하는데 남부 지역의 ‘갱 쿠아 프릭 팍 타이(Gaeng Kua Prik Pak Tai)’라는 유명한 요리를 바탕으로 한다. 특히 열기를 더하기 위해 뜨랑 지방의 두 가지 후추를 사용하며 직접 재배한 피클 콩과 함께 낸다. 가금류 특유의 호불호가 갈리는 향을 극소화하는 재미있는 디시로 기억된다.

(3) 메인 정찬 ‘카오 갱’

메인으로 나오는 카오 갱은 길거리 노점에서 만나는 밥과 몇 가지 반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완성한 메뉴다. 직역하면 밥과 카레인데 한국 반찬가게처럼 다양한 반찬을 판매하는 곳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보통 밥과 함께 먹을 반찬 두세 가지를 선택하는 구조인데, 와나육에서는 태국 북부와 북동부에서 온 두 가지 품종의 쌀로 지은 밥을 베이스로 매일 달라지는 반찬을 함께 구성해 반상 차림으로 전달한다. 여기에 북동부에서 먹는 관습처럼 튀기듯 구워낸 크리스피 프라이드 에그를 더한다. 흰자 부분을 볼륨감 있게 튀겨내고 그 위에 피시소스에 절인 계란 노른자와 절인 오리알 노른자를 함께 올려 낸다. 상큼한 향을 위한 라임 웨지와 쪽파, 샬럿, 약간의 칠리와 함께 먹으면 한없이 쌀밥이 들어간다. 한국인에게도 무척 익숙하고 직관적으로 만족스러운 맛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4) 토디팜 케이크와 디저트

야자열매로 만든 ‘토디팜 케이크’
야자열매로 만든 ‘토디팜 케이크’
마지막으로 디저트인 토디팜 케이크와 쁘띠 푸르로 마무리하는데 토디팜은 달콤하면서도 리치와는 약간 다른 공작야자열매다. 과일 통조림으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생과로 먹는 그 천연 단맛 또한 무척 매력적이다. 반투명한 흰색 토디팜은 말랑한 식감에 달콤함이 좋아 디저트로 많이 만날 수 있다.

나레수안 왕의 펫차부리 지방 방문 기록에 언급된 토디팜 케이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혜의 요리다. 와나육에서는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라누안(lanuan)이라는 이름의 잘게 썬 아이스크림에서 영감을 얻어 감자 전분 필름으로 이를 흉내 냈다. 아이스크림을 바삭바삭하게 캐러멜화한 코코넛 밀크 고형물 위에 올리고 토디팜 시럽, 코코넛, 참깨로 만든 칩으로 감싼다. 칩 아래는 토디팜으로 만든 젤과 토디팜 케이크가 있다. 그야말로 올어바웃 토디팜!

와나육은 코스 안에 굉장히 다양한 맛과 형태의 요소가 존재해 태국 식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보다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실제 그 코스를 경험해 보니 기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서버들과 찰리 셰프가 설명해주는 정보만으로도 방콕 외 태국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태국 다이닝 신의 최신 트렌드와 변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와나육은 예약 리스트에 꼭 올려보길 추천한다. 월·화요일은 휴무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5시에서 11시까지 영업한다.

5, 15 Phaya Thai Rd, Thanon Phaya Thai, Ratchathewi, Bangkok 10400 Thailand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