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재건축이라는 희망고문
“분당 아파트값이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는 건 십수 년 만에 처음 봅니다. 대형 면적은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 돼 버렸는데도 매수자들이 따라오네요. 그러다 보니 계약이 성사될 때마다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고요.”

집코노미 유튜브 채널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부동산 현장을 취재 다닌다. 요즘 단연 화제는 분당 일산 중동 산본 평촌 등 1기 신도시의 대대적인 재건축이다.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사업 진행이 본격화하면서 특히 분당에선 며칠 만에 집값이 수억원씩 뛰는 등 이미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분당은 1기 신도시 중 가장 많은 최대 1만2000가구의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이 예고됐다.

수익성 우려에 갈등

반면 다른 대부분 신도시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분당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거래량 증가 등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지역과 단지마다 집값과 사업성 등 상황이 다른 만큼 차별화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온도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수익성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중동에서 선도지구 신청을 준비 중인 한 아파트는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집값에 육박하는 추가 분담금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용적률이 높은 평촌과 산본은 여태껏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단지가 많았으나 갑자기 재건축 열풍이 몰아치면서 주민 간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8·8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의 내용을 1기 신도시에도 적용해 사업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재건축 사업의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절차상 어려움보다는 급등하는 공사비로 인한 수익성 저하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단지조차도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워낙 변수가 많아 20년 이상 걸리는 정비사업장이 태반인데, 1기 신도시 재건축을 3년 뒤 착공하겠다는 목표는 무리수라는 것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회 관문을 넘어야 한다.

수요자 측면에서 접근 필요

지금 같은 무리한 속도전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 당장 선도지구 지정 이후 불어닥칠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1기 신도시엔 현실적으로 정비사업이 쉽지 않은 아파트가 대다수인데, 이들마저 선도지구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승강기 교체와 배관 공사 등 보수를 해서 살기 괜찮은 단지들이다. 재건축이 안 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노후화하기 시작한 도시의 전반적인 재정비와 공급 확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이제 30년 된 신도시의 재건축을 부추기는 게 과연 맞는 방향인지 객관적으로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사업은 정치적 욕심이 아닌 수요자의 필요성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서울 중심지보다 높은 용적률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한다면 주거 여건 악화와 지방과의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이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대대적인 정비사업이 무산될 경우 추후 마주하게 될 사회적 혼란과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도시 계획은 백년대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