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문제적 듀오, 9월 용산 습격사건 기대하세요" [베를린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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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 그 첫 번째
국제적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품에서의 공간들
'전시장에 사람이 죽어있다!'
한 편의 연극으로 초대하는 듯한 공간을 만드는 작가들
오는 9월 3일,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인전
이번 서울 전시를 준비하며 중점으로 둔 것들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 그 첫 번째
국제적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품에서의 공간들
'전시장에 사람이 죽어있다!'
한 편의 연극으로 초대하는 듯한 공간을 만드는 작가들
오는 9월 3일,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인전
이번 서울 전시를 준비하며 중점으로 둔 것들
베를린에서 열리는 동시대 미술 전시를 통해 이곳 현장을 소개해온 'Why Berlin'은 앞으로 간헐적으로 미술 현장의 주요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보다 생생하게 베를린의 동시대 미술 현장을 전하려 한다. 문화부서의 통계에 따르면, 베를린에 살고 있는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의 수는 약 2만명이고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의 수는 16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수년 전의 통계로 현재는 더욱 증가했을지도 모른다. 베를린이라는 미술 현장은 어떤 매력으로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는가? 이곳 현장은 아티스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질문을 되새기며, 그 첫 번째로 베를린을 거점으로 작업하는 국제적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다가오는 9월 3일,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기에 베를린을 소개하며 서울을 연결하는 인터뷰의 시작점으로 이들을 초대했다. 덴마크 출신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b. 1961)과 노르웨이 출신 잉가 드라그셋(Inga Dragset, b. 1969)은 1995년부터 함께 듀오로 활동해왔다. 이들은 주로 장소 특정적인 맥락을 활용하며 사회 전반에 내재된 부조리와 위계를 드러내고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작업을 한다. 관객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만든 ‘상황적 공간’ 안에서 현실 제도 및 관습이 행사하는 권력, 불합리한 구조, 모순을 직면하고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좌절과 무력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아티스트 듀오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 호기심 가득 찬 시선이 반영된 공간은 관객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처럼 현실을 투영하는 동시에 다층적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듀오의 스튜디오는 어떤 모습일까? 예술이 만들어지는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베를린의 남서부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과거 양수 시설로 이용되었던 건물은 대형 설치 작업을 구현해볼 수 있는 높이를 지녔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워크숍 공간,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스태프를 위한 오피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과 식당, 요가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공간 등 창작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춘 종합시설이었다.
▷1990년대부터 베를린에 거주하며 이곳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대표 작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권위적인 상(Preis der Nationalgaerie, Hamburger Bahnhof, Berlin)을 2002년에 수상하기도 하셨죠.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베를린이 당신들의 예술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1997년부터 우리는 베를린에서 살았습니다. 다른 지역에 오가기도 하지만 베를린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죠. 당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베를린이 우리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대도시였고 공간이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주 당시 베를린에는 반드시 적응해야 할 확립된 미술 시스템이 없었고 동료 아티스트들과 미술 현장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이주 이전 우리가 만나고 살았던 곳인 코펜하겐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가능성을 주면서 개인적으로, 작업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를린이 예술 작업에 끼친 영향을 말하자면, 우리의 몇몇 작품은 베를린의 역사와 DNA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2008년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유럽 유대인 학살 기념비 바로 맞은편에 세운 작품 <국가 사회주의 정권하에 처형된 동성애자를 위한 기념비(Memorial to the Homosexuals Persecuted under the National Socialist Regime)>는 나치 독재 정권하에 박해받은 동성애자들을 기리는 영구적 추모 장소가 되었습니다.
10여년 후인 2019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 야외 정원에 영구 설치작 <자유의 상(Statue of Liberty)>을 세웠습니다. 실제 베를린 장벽을 변형해 가운데 부분 ATM 기계를 설치한 작품으로 장벽이 있던 역사적 장소가 인기 관광지가 된 현실을 비추며 베를린의 변화하는 경제적 양상을 다룹니다. ATM이 실제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요. ▷당신들의 작업에서 공간은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이곳 스튜디오 환경은 영감을 얻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나요?
현재 스튜디오는 2008년부터 사용해왔습니다. 이곳은 20세기 초 양수 시설로 이용되었던 건물로 중앙에 13미터 높이의 큰 홀이 있어 대형 조각 작업을 할 수 있고 대규모 공공미술 작품의 실제 크기 모델을 맞춰볼 수도 있습니다. 건물 구조 내 오래된 크레인 위에 사무실을 위한 바닥을 만들었는데 필요에 따라 중앙홀을 가로질러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죠. 뒤쪽에는 워크숍 공간과 작은 사무실, 스튜디오의 소셜 공간으로 기능하는 커다란 주방이 있습니다. 주중의 대부분 스튜디오 팀을 위해 요리하는 셰프도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의 주요 일과는 다가오는 전시와 작품 제작에 관한 미팅과 논의로 구성되고, 커피와 말차를 마시며 힘을 얻죠. 중앙홀에서는 모델을 만들고 테이프로 바닥에 붙입니다. 오브제와 조각을 배치할 때면 인형 집 놀이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보다 규모가 커졌지만요.
우리 스튜디오 팀은 단란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일합니다. 팀과의 지속적 협업이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아티스트 듀오로서 당연히 협업적 환경에 끌리지요).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영화, 소설, 철학, 건축 같은 스튜디오 밖에서 얻습니다. 서로의 경험에 관해 대화하면서 시작되지요. 작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스튜디오 팀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듀오로서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두 분 사이에 특정 역할이 있나요?
예술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작업해왔기에 듀오로 예술을 실천하는 게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입니다. 우리 작업 방식의 본질은 서로 간의 지속적인 대화입니다. 항상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특정 관념 및 미학을 발전시키며 작품의 실행과 관련된 형식적 문제(규모, 재료, 프레젠테이션 방식 등)를 논의하죠. 우리는 서로 100% 동의해야 작품으로 실현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상당히 많이 ‘편집(edit)’합니다. 적당히 절충하는 걸 좋아하지 않죠.
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티스트이자 저작자인 일종의 세 번째 페르소나가 탄생하게 됩니다. 누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는지 혹은 왜 그런지 기억조차 못 하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되었죠. 시간이 흐르며 변하기도 합니다. 같은 한 해 동안에도 각자의 에너지 레벨이 달라지기도 하고 역할이 자주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 둘 모두 협업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작품 창작 과정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거의 모든 대규모 프로젝트는 현장 방문에서 시작하고, 특정 장소와 연계된 건축 및 사회적 환경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종종 미술관 공간이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시도해보길 간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간의 본래 정체성을 완전히 잃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우리의 해석으로 새로운 층위를 더하는 것이죠. ▷제가 두 분 작업을 처음 직접 보았던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노르딕 국가관의 전시이자 미스터리한 범죄 현장 같은 공간을 보인 《컬렉터들(The Collectors)》부터 상황적 조각으로 숨겨진 서사를 제공한 호주 멜버른 NGV 트리에날레에서의 최근 전시, 프라하 쿤스트할레에서 선보인 특이한 공공 도서관까지, 작품을 보면 마치 관객을 일종의 시적·연극적인 설정으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공간을 관객에게 제안할 때 관객이 작품과 어떠한 신체적·개념적 상호작용을 가질지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우리는 관객을 우리 작품 및 전시의 수신자이자 참여자, 공동 저작자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기대하기’보다 관객이 우리를 신뢰하고 기꺼이 함께하려는 의지를 갖길 바란다고 할 수 있죠.
<컬렉터들>처럼 어떤 전시에서는 숨겨진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시를 위해서 덴마크·노르딕 국가관을 두 가지 타입의 컬렉터 집으로 바꿨습니다. 관객은 ‘집’ 안의 사물이나 미술품, 가구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죠. 2013년 런던 V&A에서의 전시 <내일(Tomorrow)>에서는 관객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실제 스크립트를 작성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크립트는 필수적인 게 아니라 전시를 탐색하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북이자 찾을 수 있는 단서에 대한 제안이었죠.
우리는 전시에서 종종 서사적 파편을 제시하기 때문에 관객이 이를 완성하고 자신의 경험과 결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점점 더 보편화되는 오늘날, 우리의 전시가 사람들이 모여 ‘실제’ 촉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는 다르게 관객이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삶을 단순히 ‘좋아요’ 또는 ‘싫어요’로 귀결시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곧 새로운 전시를 개최하시죠.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장소 특정적 작품을 보여 주시나요? 그리고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한 미술관이 전시에 영감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거대한 크기의 전시실은 우리가 전시 <Elmgreen & Dragset: Spaces (엘름그린 & 드라그셋: 공간들)>의 형식 및 디자인을 상당히 야심 차게 계획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미술관이 지하에 위치한다는 점이 이상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예술적 자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마치 ‘외부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외부 일상과 직접적 소통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말이죠.
과거 집이나 공항 같은 통합된 환경을 구성했던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다양한 공간들이 병치됩니다. 실제 크기의 독신자 주택, 식당과 주방, 수영장, 아티스트의 아뜰리에 같은 공간들 말입니다. 복잡한 패턴으로 배치된 전시의 몰입형 설치작을 연결하는 갑작스러운 서사적 연결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예를 들면,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는 디지털 현실 같은 것을 토대로 한 문화 간 유사성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공간들을 가로지르는 것은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비연속적 이미지를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보편적 경험에 비유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곳 전시에서는, 당신은 물리적 공간 안에 있게 되고, 다른 이들의 신체들 사이에서 당신의 육체로 탐색해야 하죠. ▷서울은 물론 국제적으로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시죠. 특정 국가에서 전시를 열 때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나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요소는 현장 방문이고, 이를 통해 전시장소의 실제 물리적 환경을 넘어 주변으로 확장됩니다. 예술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우리의 예술적 실천은 바로 이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작업하며 작품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덴마크, 노르웨이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도, 한국인이 일상생활과 대중문화에서 공간 및 디자인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친밀함을 느낍니다. 종종 영화감독들이 영화에서 인테리어를 스토리텔링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죠.
영화 세트장은 영화 캐릭터 및 그들의 소통을 위한 심리적 틀로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공간들> 전시를 위한 독립형 주택을 개발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사회비판적 스릴러 영화 '기생충'과 그가 영화에서 인테리어 설정을 행위를 직접 유발하는 요소로 이용한 데서 일부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문제 사안에 대한 퀴어적 관점이 지역을 초월해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형성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 문제나 이번 전시에서 다뤄지듯 새로운 비이성애중심적(non-heteronormative) 방식으로 남성의 역할을 형성하도록 시도하는 것 같은 문제들에 대해 말이죠.
▷마지막으로 전시를 통해 만나게 될 서울의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것이 미술작품이고 무엇이 전시의 건축적 구조물인지 의문이 들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전시에서 모든 부분들은 더 커다란 서사의 똑같이 중요한 일부이고, 예술과 객체 간에 위계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며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죠. 그 안에서 헤매도 되는 전시입니다. 변현주 큐레이터
이러한 질문을 되새기며, 그 첫 번째로 베를린을 거점으로 작업하는 국제적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다가오는 9월 3일,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기에 베를린을 소개하며 서울을 연결하는 인터뷰의 시작점으로 이들을 초대했다. 덴마크 출신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b. 1961)과 노르웨이 출신 잉가 드라그셋(Inga Dragset, b. 1969)은 1995년부터 함께 듀오로 활동해왔다. 이들은 주로 장소 특정적인 맥락을 활용하며 사회 전반에 내재된 부조리와 위계를 드러내고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작업을 한다. 관객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만든 ‘상황적 공간’ 안에서 현실 제도 및 관습이 행사하는 권력, 불합리한 구조, 모순을 직면하고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좌절과 무력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아티스트 듀오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 호기심 가득 찬 시선이 반영된 공간은 관객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처럼 현실을 투영하는 동시에 다층적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듀오의 스튜디오는 어떤 모습일까? 예술이 만들어지는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베를린의 남서부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과거 양수 시설로 이용되었던 건물은 대형 설치 작업을 구현해볼 수 있는 높이를 지녔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워크숍 공간,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스태프를 위한 오피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과 식당, 요가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공간 등 창작을 위한 모든 것을 갖춘 종합시설이었다.
▷1990년대부터 베를린에 거주하며 이곳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대표 작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권위적인 상(Preis der Nationalgaerie, Hamburger Bahnhof, Berlin)을 2002년에 수상하기도 하셨죠.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베를린이 당신들의 예술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1997년부터 우리는 베를린에서 살았습니다. 다른 지역에 오가기도 하지만 베를린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죠. 당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베를린이 우리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대도시였고 공간이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주 당시 베를린에는 반드시 적응해야 할 확립된 미술 시스템이 없었고 동료 아티스트들과 미술 현장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이주 이전 우리가 만나고 살았던 곳인 코펜하겐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가능성을 주면서 개인적으로, 작업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를린이 예술 작업에 끼친 영향을 말하자면, 우리의 몇몇 작품은 베를린의 역사와 DNA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2008년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유럽 유대인 학살 기념비 바로 맞은편에 세운 작품 <국가 사회주의 정권하에 처형된 동성애자를 위한 기념비(Memorial to the Homosexuals Persecuted under the National Socialist Regime)>는 나치 독재 정권하에 박해받은 동성애자들을 기리는 영구적 추모 장소가 되었습니다.
10여년 후인 2019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 야외 정원에 영구 설치작 <자유의 상(Statue of Liberty)>을 세웠습니다. 실제 베를린 장벽을 변형해 가운데 부분 ATM 기계를 설치한 작품으로 장벽이 있던 역사적 장소가 인기 관광지가 된 현실을 비추며 베를린의 변화하는 경제적 양상을 다룹니다. ATM이 실제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요. ▷당신들의 작업에서 공간은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이곳 스튜디오 환경은 영감을 얻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나요?
현재 스튜디오는 2008년부터 사용해왔습니다. 이곳은 20세기 초 양수 시설로 이용되었던 건물로 중앙에 13미터 높이의 큰 홀이 있어 대형 조각 작업을 할 수 있고 대규모 공공미술 작품의 실제 크기 모델을 맞춰볼 수도 있습니다. 건물 구조 내 오래된 크레인 위에 사무실을 위한 바닥을 만들었는데 필요에 따라 중앙홀을 가로질러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죠. 뒤쪽에는 워크숍 공간과 작은 사무실, 스튜디오의 소셜 공간으로 기능하는 커다란 주방이 있습니다. 주중의 대부분 스튜디오 팀을 위해 요리하는 셰프도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의 주요 일과는 다가오는 전시와 작품 제작에 관한 미팅과 논의로 구성되고, 커피와 말차를 마시며 힘을 얻죠. 중앙홀에서는 모델을 만들고 테이프로 바닥에 붙입니다. 오브제와 조각을 배치할 때면 인형 집 놀이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보다 규모가 커졌지만요.
우리 스튜디오 팀은 단란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일합니다. 팀과의 지속적 협업이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아티스트 듀오로서 당연히 협업적 환경에 끌리지요).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영화, 소설, 철학, 건축 같은 스튜디오 밖에서 얻습니다. 서로의 경험에 관해 대화하면서 시작되지요. 작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스튜디오 팀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듀오로서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두 분 사이에 특정 역할이 있나요?
예술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작업해왔기에 듀오로 예술을 실천하는 게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입니다. 우리 작업 방식의 본질은 서로 간의 지속적인 대화입니다. 항상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특정 관념 및 미학을 발전시키며 작품의 실행과 관련된 형식적 문제(규모, 재료, 프레젠테이션 방식 등)를 논의하죠. 우리는 서로 100% 동의해야 작품으로 실현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상당히 많이 ‘편집(edit)’합니다. 적당히 절충하는 걸 좋아하지 않죠.
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티스트이자 저작자인 일종의 세 번째 페르소나가 탄생하게 됩니다. 누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는지 혹은 왜 그런지 기억조차 못 하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되었죠. 시간이 흐르며 변하기도 합니다. 같은 한 해 동안에도 각자의 에너지 레벨이 달라지기도 하고 역할이 자주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 둘 모두 협업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작품 창작 과정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거의 모든 대규모 프로젝트는 현장 방문에서 시작하고, 특정 장소와 연계된 건축 및 사회적 환경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종종 미술관 공간이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시도해보길 간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간의 본래 정체성을 완전히 잃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우리의 해석으로 새로운 층위를 더하는 것이죠. ▷제가 두 분 작업을 처음 직접 보았던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노르딕 국가관의 전시이자 미스터리한 범죄 현장 같은 공간을 보인 《컬렉터들(The Collectors)》부터 상황적 조각으로 숨겨진 서사를 제공한 호주 멜버른 NGV 트리에날레에서의 최근 전시, 프라하 쿤스트할레에서 선보인 특이한 공공 도서관까지, 작품을 보면 마치 관객을 일종의 시적·연극적인 설정으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공간을 관객에게 제안할 때 관객이 작품과 어떠한 신체적·개념적 상호작용을 가질지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우리는 관객을 우리 작품 및 전시의 수신자이자 참여자, 공동 저작자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기대하기’보다 관객이 우리를 신뢰하고 기꺼이 함께하려는 의지를 갖길 바란다고 할 수 있죠.
<컬렉터들>처럼 어떤 전시에서는 숨겨진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시를 위해서 덴마크·노르딕 국가관을 두 가지 타입의 컬렉터 집으로 바꿨습니다. 관객은 ‘집’ 안의 사물이나 미술품, 가구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죠. 2013년 런던 V&A에서의 전시 <내일(Tomorrow)>에서는 관객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실제 스크립트를 작성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크립트는 필수적인 게 아니라 전시를 탐색하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북이자 찾을 수 있는 단서에 대한 제안이었죠.
우리는 전시에서 종종 서사적 파편을 제시하기 때문에 관객이 이를 완성하고 자신의 경험과 결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점점 더 보편화되는 오늘날, 우리의 전시가 사람들이 모여 ‘실제’ 촉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는 다르게 관객이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삶을 단순히 ‘좋아요’ 또는 ‘싫어요’로 귀결시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곧 새로운 전시를 개최하시죠.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장소 특정적 작품을 보여 주시나요? 그리고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한 미술관이 전시에 영감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거대한 크기의 전시실은 우리가 전시 <Elmgreen & Dragset: Spaces (엘름그린 & 드라그셋: 공간들)>의 형식 및 디자인을 상당히 야심 차게 계획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미술관이 지하에 위치한다는 점이 이상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예술적 자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마치 ‘외부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외부 일상과 직접적 소통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말이죠.
과거 집이나 공항 같은 통합된 환경을 구성했던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다양한 공간들이 병치됩니다. 실제 크기의 독신자 주택, 식당과 주방, 수영장, 아티스트의 아뜰리에 같은 공간들 말입니다. 복잡한 패턴으로 배치된 전시의 몰입형 설치작을 연결하는 갑작스러운 서사적 연결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예를 들면,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는 디지털 현실 같은 것을 토대로 한 문화 간 유사성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공간들을 가로지르는 것은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비연속적 이미지를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보편적 경험에 비유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곳 전시에서는, 당신은 물리적 공간 안에 있게 되고, 다른 이들의 신체들 사이에서 당신의 육체로 탐색해야 하죠. ▷서울은 물론 국제적으로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시죠. 특정 국가에서 전시를 열 때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나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요소는 현장 방문이고, 이를 통해 전시장소의 실제 물리적 환경을 넘어 주변으로 확장됩니다. 예술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우리의 예술적 실천은 바로 이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작업하며 작품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덴마크, 노르웨이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도, 한국인이 일상생활과 대중문화에서 공간 및 디자인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친밀함을 느낍니다. 종종 영화감독들이 영화에서 인테리어를 스토리텔링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죠.
영화 세트장은 영화 캐릭터 및 그들의 소통을 위한 심리적 틀로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공간들> 전시를 위한 독립형 주택을 개발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사회비판적 스릴러 영화 '기생충'과 그가 영화에서 인테리어 설정을 행위를 직접 유발하는 요소로 이용한 데서 일부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문제 사안에 대한 퀴어적 관점이 지역을 초월해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형성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 문제나 이번 전시에서 다뤄지듯 새로운 비이성애중심적(non-heteronormative) 방식으로 남성의 역할을 형성하도록 시도하는 것 같은 문제들에 대해 말이죠.
▷마지막으로 전시를 통해 만나게 될 서울의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것이 미술작품이고 무엇이 전시의 건축적 구조물인지 의문이 들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전시에서 모든 부분들은 더 커다란 서사의 똑같이 중요한 일부이고, 예술과 객체 간에 위계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며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죠. 그 안에서 헤매도 되는 전시입니다. 변현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