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 사진=뉴스1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 사진=뉴스1
"박근혜 대통령 모신 게 그렇게 죽을 죄예요? 제가 말 탄 게 그렇게 죽을 죄냐고요. 진짜 이 나라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요. 반성도 안 하고 인정도 안 하는 송영길, 박영수, 정경심, 김경수는 모두 가석방, 보석, 사면, 복권 등으로 자유를 찾고 그래도 정부를 지지한 저와 어머니는 XX 돼 버린 상황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윤석열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감형·복권을 단행한 가운데,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하고 있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정치인, 전직 주요 공직자, 경제인, 서민생계형 형사범 등을 포함한 1219명 명단에 최 씨가 포함되지 않아서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석방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으로 정치권이 떠들썩했지만, 최 씨의 사면 여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최 씨는 '잊힌 존재'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 사진=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 사진=연합뉴스
정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울분을 토했다. 그는 "사건 관계자가 모두 사면·복권됐는데 어머니에겐 뭐라고 하면 좋으냐"며 "차라리 제가 들어가고 어머니가 나오시면 마음은 더 편하겠다"고 했다.

정 씨는 특히 "다 같이 풀어주지 말지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러냐)"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모신 게 그렇게 죽을 죄냐? 제가 말 탄 게 그렇게 죽을 죄냐?"고 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됐던 대부분의 관련자가 사면되거나 복권까지 된 상황에서, 최 씨만 거론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대로, '국정농단'과 관련해 구속·기소됐던 이들은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간 상태다. 소위 '국정농단'에는 △청와대 문건 유출 △이화여대 학사 비리 △삼성·롯데 뇌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여러 사건이 포함되는데, 50여 명이 달하는 관련자들은 형을 마쳤거나, 사면·복권됐다.

이번 8·15 사면·감형·복권 명단에도 국정농단 관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반면, 여러 차례 사면을 요청해 온 최 씨는 이번에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 씨는 2016년 11월 구속돼, 2020년 6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뇌물 등 혐의로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원의 형이 확정돼 9년째 복역 중이다.

최 씨는 지난해 11월 자필 편지로 윤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한 바 있다. 그의 법률대리인 이경재 변호사가 공개한 사면 요청서에는 "나의 사면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 스스로 (사면요청서를) 쓰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국정 농단자와 청와대 전 비서관조차 사면·복권되는데 서민으로 남아 있는 저에게는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최 씨의 그의 딸인 정 씨는 이번에 김경수 전 지사가 복권될 때는 물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보석 허가를 받았을 때, 정경심 씨가 가석방됐을 때도 끈질기게 사면을 요청하고, 실망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 같이 잘못해놓고, 정치인 신분은 전부 사면해주고, 최순실만 정치인 아니라고 감옥에서 썩으라는 게 말이 되냐", "정치인들은 무슨 짓을 해도 면죄부를 주고, 일반 국민들은 법대로 하냐", "강자와 약자의 차이인가. 불평등한 것 같다"는 평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권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최 씨의 사면은 정치적으로 부담만 될 뿐 실익이 없어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여권 중론이다.

실제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론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될 때마다, 민주당은 "그럼 최순실도 사면해야 하느냐"는 공세를 펴왔다. 이 때문에 최 씨의 사면 문제는 테이블에도 올라가지 않는 분위기다. 최 씨가 절박하게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는 온도 차가 큰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통화에서 "(최 씨 사면은) 논의조차 안 될 가능성이 높고, 이번 정권에서 사면될 가능성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 교수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최순실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윤 정권이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이들로 이뤄졌음을 짚으며 "정치인들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곁가지'지만, 최 씨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 사람을 사면하는 것은 수사 행위를 전면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치인과 최 씨는 경우가 다르다"고 부연했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 역시 "최 씨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최 씨는 우리나라 전체에 큰 상처를 준 사람"이라면서 "최 씨는 이를 감안해 괘씸죄를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진보 정권에서 사면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