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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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마이크로키메리즘>의 저자 리즈 바르네우는 “우리”라고 대답한다. 바르네우는 <르몽드> <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 매체에 기고하는 과학 저널리스트다. 2017년에는 올해의 프랑스 과학기자상을 받았다.

저자는 마이크로키메리즘 관점에서 인간의 몸을 바라본다. 마이크로키메리즘은 미세하다는 뜻의 접두사 마이크로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 키메라를 합친 말이다.

마이크로키메리즘에 따르면 인간도 키메라처럼 여러 사람의 세포가 모여 만들어진 생명체다. 부모와 자식, 배우자, 장기 기증자, 그리고 성적 파트너의 세포까지 포함한다.

[책마을] 인간은 여러 사람의 세포가 모여 만들어졌다
마이크로키메리즘은 출산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1969년 한 임신부의 혈액에서 남성에게서만 발견되는 Y 염색체를 찾으면서다. 남자아이를 임신한 엄마의 혈액에서 태아의 세포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런 ‘태아 유래 세포’는 임신 기간뿐 아니라 출산 후 수십 년 뒤에도 엄마의 몸에서 발견됐다.

이 책은 마이크로키메리즘 연구 영역이 점점 확장해온 과정을 그린다. 처음에는 태아 유래 세포의 부정적인 영향을 찾던 학자들은 점차 이 세포들이 모체의 몸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 몸속 세포들이 더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부모와 자식은 물론 엄마의 몸에 남아 있던 할머니의 세포, 장기 기증자, 임신 초기 단계에 흡수된 쌍둥이, 심지어 성적 파트너의 세포까지 몸에서 발견됐다.

이런 연구 결과는 ‘나’라는 정체성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한다. 나의 몸에도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될 수도 있고, 엄마가 낳은 자식의 몸에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DNA 정보를 지닌 세포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줬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DNA를 지닌 순수하고 동질적인 생명이라는 관점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마이크로키메리즘 세포에는 명과 암이 모두 존재한다. 엄마의 몸에서 태아에게 들어간 모체 세포가 ‘면역 교육’을 시켜 아기의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걸 돕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반대로 태아 유래 세포가 특정 질병의 유병률을 높이거나 자가면역질환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저자는 “완전한 흑도 백도 없다”고 표현한다.

경계는 필요하다. 아직 가설 단계에 머무르거나 연구가 진행 중인 해석이 많다. 저자 본인도 “이 그림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어서 미완성인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맹신하지만 않는다면 우리 일상에 밀접한 건강과 생명, 그리고 부모 관계에 대한 독특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