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벤처캐피털(VC)이 일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 스타트업이 올해 상반기에 유치한 해외 자금은 225억엔(약 20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69% 급증했다. 7월 이후 미국으로부터 각각 100억엔, 70억엔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도 나왔다. 해외 VC의 투자액만 놓고 보면 아직 큰 액수는 아니지만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일본의 디지털 전환 수요와 스타트업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중 마찰로 중국에 투자하려던 자금이 일본으로 눈길을 돌리고 일본 정부의 해외 VC 유치 등 정책적 지원도 현지 스타트업에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스타트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8774억엔 규모인 스타트업 투자를 2027년까지 10조엔으로 늘려 스타트업 10만 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다. 정부의 투자 확대, 규제 완화, 창업교육 강화 등이 뒤따랐다. 정부계 펀드가 미국, 영국의 유력 VC에 출자해 일본 스타트업 투자로 이어지게 하기도 했다. 창업을 꺼리던 문화도 확 달라져 도쿄대에 창업 시설이 생기고 주요 대학도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창업 불모지’였던 일본이 스타트업을 통해 ‘잃어버린 30년’ 동안 함께 잃은 경제 혁신을 되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일본은 한국 스타트업도 속속 빨아들이고 있다. 아시아 창업 허브 자리를 일본에 내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을 추격하는 후발주자 일본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지난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64%가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경영 애로로는 71%가 ‘자금 조달 어려움’을, 44%가 ‘신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률·제도’를 꼽았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딥테크를 중심으로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겠지만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제대로 판을 깔아줄 필요는 있다. 일단 스타트업들이 규제 걱정, 자금 걱정 없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