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칼럼] 세상 소름끼치는 밤의 여왕 "지옥의 복수심이 끓어오르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겨우 35세로 요절하기 두 달 전에 남긴, 그의 마지막 오페라다. 한때는 궁정 작곡가로 나름 위세를 떨쳤고, 로렌초 다 폰테 같은 최고의 작가들과 작업을 하던 그였지만 그즈음에는 생계를 위해 무조건 많은 작품을 쏟아내듯 써야만 했다.

<마술피리>의 대본가 엠마누엘 쉬카네더는 재주꾼에 실력 있는 극작가였지만 그렇다고 고고한 예술가도, 심오한 작가정신을 지닌 진지한 문필가도 아니었다. 그는 중부 유럽 일대를 떠도는 이런저런 동화와 설화를 짜깁기하고, 계몽주의 비밀결사의 몇 가지 코드를 집어넣어 일종의 느슨한 민중 계몽극 스토리를 만들어 모차르트에게 넘긴다. 줄거리는 매혹적이었지만 앞뒤가 안 맞았고, 대단히 통속적이기도 했다.
엠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 / 이미지 출처. ©TMDB
엠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 / 이미지 출처. ©TMDB
거기에 생명력을 부여한 건 역시나 모차르트의 음악이었다. 생존이라는 명제에 쫓겨, 피로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였다. 그는 장면마다 빛나는 선율과 깊이 있는 음악으로 동화 같은 캐릭터를 신화적 인물로 격상시켰으며, 엉성한 대본 때문에 생긴 느슨한 서사와 손발이 안 맞는 극 전개는 오히려 모차르트의 심오한 음악과 어우러져 고도의 추상성과 모호한 상징성을 띤 격조 높은 음악극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이미지 출처. ©서울국제음악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이미지 출처. ©서울국제음악제
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타미노 왕자와 파파게노는 진정한 인격 완성을 목표로 가혹한 시험에 도전한다. 침묵의 계율을 준수하고 고통을 참아내며, 최후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왕자는 이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지만, 새잡이 파파게노는 불만이 가득하다. 그들의 모험은 한 편의 판타지 영화와도 같아서 마법의 아이템인 피리와 마술종이 주어지고, 숲속에선 새와 들짐승들이 길을 인도해 준다. 그들의 궁극적인 이상향은 빛, 즉 계몽과 이성을 숭배하는 자라스트로의 전당으로 입성하는 것이다.

▶▶▶[관련 리뷰] 호화 캐스팅으로 '마술피리' 같은 고음의 향연 [오페라 리뷰]
2022년 ACC 수요극장 '마술피리' 공연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2년 ACC 수요극장 '마술피리' 공연 /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마술피리>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지녔다. 아기자기한 음악과 밝고 신나는 모험 스토리는 가족용 오페라로 손색이 없다.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 불리는 비밀결사의 입회 과정이 내재된 일종의 상징주의 오페라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모험과 도전의 동화 오페라 혹은 음모와 밀교 의식으로 가득 찬 상징주의 작품. 어느 쪽이 진실한 모습인지는 그 누구도 단정하기 힘들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오페라가 우리에게 정말 재밌고 깊은 감동을 주는 명작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마술피리>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후속작의 집필을 진지하게 구상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스웨덴의 전설적인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 영화로 된 <마술피리>를 발표했고, 2006년에는 영국 최고의 지성파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음악 영화로 다시 한번 잔잔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왼쪽) 1975년 이마르 베리의 영화 '마법 피리'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오른쪽) 2006년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 '마술피리' 포스터 / 사진. ©IMDb.com , Inc.
(왼쪽) 1975년 이마르 베리의 영화 '마법 피리'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오른쪽) 2006년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 '마술피리' 포스터 / 사진. ©IMDb.com , Inc.
이처럼 서구의 대표적인 지성들이 하나같이 이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몽의 어둠을 몰아내고 결국은 빛이 승리를 거둔다는 오페라의 내용이 야만과 억압에서 벗어나 계몽과 이성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유럽 근대의 계몽주의적 이상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고결한 왕자와 공주 커플 뿐만이 아니라 파파게노 같은 평범한 시민적 자아까지도 궁극에는 역사 발전의 성취를 함께 누린다는 넉넉한 세계관 또한 지식인과 철학자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첨단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도 전쟁이 주는 공포와 각종 사회적 갈등이 빚어내는 파열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고 들으며, 평생 조화와 평화의 세계를 희구했던 ‘모차르트적 지혜’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봄직하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6 I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W.A.Mozart "Die Zauberflöte)]


황지원 오페라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