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보다 ‘불안이’가 익숙한 청춘 작가들의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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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기획전 ‘불안 해방 일지’
불안은 미래와 표리관계로 묶인다. 둘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반드시 마주할 것 같은 언젠가를 떠올릴 때 머릿속엔 불안이 움튼다. 올여름 극장가를 달군 영화 ‘인사이드 아웃2’. 영화 속 주인공 ‘불안이(Anxiety)’는 말한다. “나는 미래를 설계해(I Plan for the Future).”
문제는 불안이의 존재감이 너무 커졌을 때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면 불안은 일상을 깨뜨린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흙수저론’ 같은 이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청년세대에게서 익숙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청춘들의 ‘불안 과잉’을 예술로 풀어낸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불안 해방 일지(Anxieties, when Shared)’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전시다. 불안이 개인의 감정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 경험하는 집단적인 정서라는 점에서 동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불안을 마주해보자는 취지다. 1981~1994년 사이에 태어난 9명의 청년 작가들이 각자가 겪은 불안에서 받은 영감을 회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 작품 34점을 선보였다.
심연정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MBTI신드롬이 불고 사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데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가 있다”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다루는 청년작가들을 통해 일상에 스며든 불안에 주목하는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알바하는 예술가의 신세는 비참한걸까
현실적인 고민을 녹여낸 전시인 만큼, 고답적이지 않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작가들 역시 경제적 궁핍이나 취업으로 고민할 때가 있기 때문.1994년생인 이예은 작가의 사진 시리즈 ‘무모 연작’이 이런 경험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작 중 하나인 ‘높이재기’는 그리 높지도 않은 시골의 흔한 다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모습이 담겼는데, 열심히 노력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은 일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예술 작업활동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돈을 번 작가의 실체적 불안이 녹아 있다. 좋아서 하는 예술로 경제적 만족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불안이 ‘예술가’이면서 ‘알바생’이란 정체성을 가지게 만든 것.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초콜릿, 치즈 공장에 다녔고 지금도 작업을 하면서 일감이 있으면 간다”며 “일용직은 언제나 일할 수 있으면서 언제든 잘릴 수 있는 곳 아니겠느냐. 그런 허무감을 담았다”고 했다.
불안이 마냥 비참한 것은 아니다. 같은 연작인 ‘실내 온도 높이기’는 추운 겨울 자신의 체온으로 건물의 온도를 높이는 시도를 한다. 무모하고 쓸모없는 행동이지만, 불안 속에서도 행동하면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1981년생 작가인 이원우의 평면 조각 연작인 ‘에어 워즈(Air Words)’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에 쓴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 같은 문구로 불안한 미래를 밝게 환기한다. 일상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불안과 사회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그려온 양유연의 회화는 불안을 강조한다. 전시에 나온 ‘휘광’은 눈동자에 빛을 집중시키는데, 동양화에서 주로 쓰는 장지에 아크릴을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의 층이 어우러져 고독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입장료는 5000원.
유승목 기자
문제는 불안이의 존재감이 너무 커졌을 때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면 불안은 일상을 깨뜨린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흙수저론’ 같은 이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청년세대에게서 익숙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청춘들의 ‘불안 과잉’을 예술로 풀어낸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불안 해방 일지(Anxieties, when Shared)’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전시다. 불안이 개인의 감정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 경험하는 집단적인 정서라는 점에서 동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불안을 마주해보자는 취지다. 1981~1994년 사이에 태어난 9명의 청년 작가들이 각자가 겪은 불안에서 받은 영감을 회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 작품 34점을 선보였다.
심연정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MBTI신드롬이 불고 사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데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가 있다”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다루는 청년작가들을 통해 일상에 스며든 불안에 주목하는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알바하는 예술가의 신세는 비참한걸까
현실적인 고민을 녹여낸 전시인 만큼, 고답적이지 않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작가들 역시 경제적 궁핍이나 취업으로 고민할 때가 있기 때문.1994년생인 이예은 작가의 사진 시리즈 ‘무모 연작’이 이런 경험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작 중 하나인 ‘높이재기’는 그리 높지도 않은 시골의 흔한 다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모습이 담겼는데, 열심히 노력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은 일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예술 작업활동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돈을 번 작가의 실체적 불안이 녹아 있다. 좋아서 하는 예술로 경제적 만족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불안이 ‘예술가’이면서 ‘알바생’이란 정체성을 가지게 만든 것.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초콜릿, 치즈 공장에 다녔고 지금도 작업을 하면서 일감이 있으면 간다”며 “일용직은 언제나 일할 수 있으면서 언제든 잘릴 수 있는 곳 아니겠느냐. 그런 허무감을 담았다”고 했다.
불안이 마냥 비참한 것은 아니다. 같은 연작인 ‘실내 온도 높이기’는 추운 겨울 자신의 체온으로 건물의 온도를 높이는 시도를 한다. 무모하고 쓸모없는 행동이지만, 불안 속에서도 행동하면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1981년생 작가인 이원우의 평면 조각 연작인 ‘에어 워즈(Air Words)’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에 쓴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 같은 문구로 불안한 미래를 밝게 환기한다. 일상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불안과 사회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그려온 양유연의 회화는 불안을 강조한다. 전시에 나온 ‘휘광’은 눈동자에 빛을 집중시키는데, 동양화에서 주로 쓰는 장지에 아크릴을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의 층이 어우러져 고독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입장료는 5000원.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