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시인들이 산문을 특별히 잘 쓴다, 라는 어떤 선입관이 있다. 학부 시절 현대 시 수업을 들을 때 “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시집들을 편집하면서 생의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상대적으로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이를 구현하는 장르로서의 시를 생각하곤 했다. 그런 시인들에게 긴 글의 기회가 주어지면 문장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일상의 단면을 꿰뚫는 리드미컬한 글들을 선보이는구나 하는 감탄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시인들이 자유로운 형식의 책을 시도하면 꼭 사 보는 편이다.
‘일상의 단면’ 꿰뚫는 시인의 산문…“좋던 것도 잃고, 싫던 것도 잊는다”
서효인 시인의 <좋음과 싫음 사이>는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6월의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열두 명의 시인이 월별로 시,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을 매일의 날짜에 맞춰 나누어 보여주는 기획이다. 읽으면서는 대체로 산문집의 성격에 가장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그래도 다양한 글쓰기를 포괄하여 신선했다. 그동안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2010)부터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문학동네, 2022) 등의 시집을 비롯해, <잘 왔어 우리 딸>(난다, 2014)과 <아무튼 인기가요>(제철소, 2020)와 같은 그의 산문도 좋아하고 즐겨 읽어왔다. 이번 책에서도 담담한 척 웃겨보려는 특유의 유머와 자기모순을 낭만화하지 않는 솔직함 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전작들에서 내가 좋아했던 면면이기도 해서 반갑고 재밌었다.

서효인 시인과는 한 출판사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동료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 뒤로도 같은 문학 분야의 편집자였고, 저자로도 만났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그의 할머니 이야기는 종종 듣기도 하고 이전 산문집에서도 보게 되곤 했는데, 이번에 명랑핫도그 에피소드에서 여지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가장 슬펐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도 자신의 감정에 압도되기보다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와 그 속의 복잡함을 포착해 주어서 읽는 이에게 울 자리를 내어주는 어떤 무심하고도 유심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일상의 단면’ 꿰뚫는 시인의 산문…“좋던 것도 잃고, 싫던 것도 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케첩을 지그재그로 뿌렸다. 다디단 핫도그에 새콤달콤한 케첩을 뿌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어떻게든지 먹여보겠다고. 그러니 할머니는 먹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걱정은 정말 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나는 이렇게 명랑한 사람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도. (<6월 4일: 이렇게 명랑>, p. 41)

이 외에도 김정환 시인과의 인터뷰 <6월 10일: 백년 중에 하룻저녁>에서는 책으로 가득했던 당산동 아파트 거실 서재에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시 <6월 14일: 단지와 역사>에서는 서울 변두리와 근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 쟁의와 담합의 비루함에 관해, 그러나 이미 진창에 빠져버린 우리 모두에 대해 생각했다.
‘일상의 단면’ 꿰뚫는 시인의 산문…“좋던 것도 잃고, 싫던 것도 잊는다”
단지 살아온 시간의 더께 때문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빡빡한 하루를 꾸리고 지독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불안한 내일을 점치다 보면, 좋은 것과 싫은 것도 경계가 차츰 흐려지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너무 좋던 것도 잃고, 무척 싫던 것도 잊으며. 그래도 이 책에서 서효인 시인은 아직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그 안의 추잡하고 지겨운 것들도, 여전히 좋아해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위로받았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