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주요 항구의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의 수입량을 넘볼 정도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계기로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또다시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 역시 무역 갈등 리스크(위험 요인)를 줄이기 위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관세폭탄 예고에…美항구마다 중국산 수입품 '산더미'

때아닌 美 항구 ‘호황’

18일(현지시간) 미국소매업연맹(NRF)에 따르면 올해 미국 주요 항구를 통해 수입되는 물량은 총 249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관측됐다. 지난해에 비해 12% 증가한 수준이다. 사상 최대치인 2021년(2580만TEU)에 근접한 것으로, 미국 항구를 통한 수입량이 2500만TEU를 넘어서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미국 컨테이너 수입의 3분의 1을 처리하는 로스앤젤레스(LA)항구와 롱비치항구의 올 7월 수입량은 각각 50만1300TEU, 43만5100TEU로 총 93만6400TEU였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 많은 수입량이다. 사상 최대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1년 5월로, 이때 두 항구의 수입량은 총 98만500TEU였다.

코로나 팬데믹 땐 물량 주문이 몰리면서 수입량이 늘었지만 최근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긴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높아질 수 있는 데다 미국 항만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으로 심각한 공급망 병목 현상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수입량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상 9월 개학과 연말 소비 시즌에 앞서 이 시기에 수입 물량이 집중되기는 하지만 최근 상황은 미·중 무역 갈등 우려에 대한 대비 측면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대규모 무역 적자 등을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전 세계 무역 질서가 위협받고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큰 타격을 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대중 관세나 무역 조치와 관련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강경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11월 대선 이후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고, 공급망이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독일 컨테이너 운송 업체 하파그로이드의 롤프 하벤 얀센 최고경영자(CEO)는 “올 2분기 이후 운송 수요 급증에 크게 놀라고 있다”며 “올 8월 잠정치를 보면 3분기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美 직접 투자 늘리는 中 기업

중국 업체들도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에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같은 리스크를 줄이려면 해외 투자가 시급하다고 보고 발 빠르게 경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 대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상당수 중국 업체가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신소재 업체인 바이탈뉴머티리얼은 최근 텍사스 오스틴에 자회사 등록을 마쳤다. 산둥 유마 선쉐이드는 이달 초 미국 자회사인 유마 텍사스를 설립하고 대규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신취안 오토모티브 트림 역시 텍사스에 자회사를 세우고 연구개발과 설계, 제조, 판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한벨은 미국에서 진공 펌프 제품을 팔기 위해 조지아에 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CNBC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중국에 대한 태도가 중국 업체들의 미국 직접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며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야만 향후 불거질 각종 무역 전쟁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투자자문회사 BCA리서치는 “미국 대선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중국과 무역 긴장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따른 각국 업체의 움직임이 분주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