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주는 곳 가겠다" 태업…외국인 근로자 '을질'에 멍드는 산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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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20년의 명암
(2) 만성 인력 부족에 악용되는 고용허가제
이직 '3년내 3회' 제한했지만
사업장 옮기려면 계약해지 필수
외국인, 근무태만하며 해고 요구
고용주는 '울며 겨자먹기'로 해지
외국인 한명 뽑는데 6개월 걸려
브로커들 보수 받고 빼가기 만연
"지방인력 '수도권·도시 쏠림' 심각"
(2) 만성 인력 부족에 악용되는 고용허가제
이직 '3년내 3회' 제한했지만
사업장 옮기려면 계약해지 필수
외국인, 근무태만하며 해고 요구
고용주는 '울며 겨자먹기'로 해지
외국인 한명 뽑는데 6개월 걸려
브로커들 보수 받고 빼가기 만연
"지방인력 '수도권·도시 쏠림' 심각"
“외국인 근로자가 ‘에브리데이(매일) 야근’을 시켜달라고 합니다.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며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합니다.”
여성 기업인 A씨는 올해 초 외국인 직원과 함께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에게 이같이 호소했다. 이런 장면을 찍은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원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 B씨는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제조 현장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들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19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허가제(E-9) 근로자 등을 포함한 외국인 임금 근로자 92만3000명 중 33만5000명(36.3%)은 고용된 지 1년 이내에 근무지를 바꿨다. 1년 전(22만5000명)보다 48.9%나 늘어난 수준이다. 이 중 17만6000명(19.0%)은 6개월도 안 돼 직장을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고용 행태는 고용허가제 도입 취지와 거리가 있다. 원칙적으로 고용허가제 외국인은 근무를 시작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한다. 사업장 변경 신청은 입국일로부터 3년 내 3회로 제한된다. 부당한 처우가 있거나 사업주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등 고용주의 귀책 사유가 있을 때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사업장으로 옮기고 싶은 외국인들이 태업을 통해 계약 해지를 유도한다”고 전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직을 유도하는 전문 브로커도 생겨났다. 충북에 있는 보도블록 제조사 데코페이브의 박문석 대표는 최근 고용허가제로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6명을 채용했지만, 업무 태만 등의 사유로 이 중 5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박 대표는 “한국인 브로커가 외국인 커뮤니티에 심어 놓은 같은 국적(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이 이직을 권유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
한 인력 소개업체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이직’ 성공 보수로 외국인에게 받는 수당이 한 명당 200만원 수준”이라며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한 일부 업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에서 퇴직 공제부금(퇴직금)을 납부한 건설 근로자 중 19.6%가 외국인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없이는 ‘공사판’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선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과 고용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수도권으로 이직할 유인이 생긴다. 법상 고용허가제를 활용하지 못하는 중견기업이 이런 근로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직된 고용허가제의 일부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채용한 외국인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향후 채용 과정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고용한 직원이 무단결근, 상습 지각 등을 하더라도 해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에 대해 지역이나 업종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현행 고용허가제엔 나쁜 사업주와 나쁜 근로자를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외국인 공급 우위에 따른 사용주 고충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정영효/원종환 기자 kyh@hankyung.com
여성 기업인 A씨는 올해 초 외국인 직원과 함께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에게 이같이 호소했다. 이런 장면을 찍은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원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 B씨는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제조 현장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들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외국인 직원 세 명 중 한 명, 1년 내 이직
올해 도입 20주년을 맞은 고용허가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조 현장에 근로자가 부족하다 보니 의도적인 태업으로 근로 계약 파기를 유도한 뒤 직장을 옮기거나, 기업인들에게 더 좋은 근로 조건을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19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허가제(E-9) 근로자 등을 포함한 외국인 임금 근로자 92만3000명 중 33만5000명(36.3%)은 고용된 지 1년 이내에 근무지를 바꿨다. 1년 전(22만5000명)보다 48.9%나 늘어난 수준이다. 이 중 17만6000명(19.0%)은 6개월도 안 돼 직장을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고용 행태는 고용허가제 도입 취지와 거리가 있다. 원칙적으로 고용허가제 외국인은 근무를 시작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한다. 사업장 변경 신청은 입국일로부터 3년 내 3회로 제한된다. 부당한 처우가 있거나 사업주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등 고용주의 귀책 사유가 있을 때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사업장으로 옮기고 싶은 외국인들이 태업을 통해 계약 해지를 유도한다”고 전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직을 유도하는 전문 브로커도 생겨났다. 충북에 있는 보도블록 제조사 데코페이브의 박문석 대표는 최근 고용허가제로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6명을 채용했지만, 업무 태만 등의 사유로 이 중 5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박 대표는 “한국인 브로커가 외국인 커뮤니티에 심어 놓은 같은 국적(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이 이직을 권유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
한 인력 소개업체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이직’ 성공 보수로 외국인에게 받는 수당이 한 명당 200만원 수준”이라며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한 일부 업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외국인 근로자가 ‘슈퍼 을’
전문가들은 산업 현장의 만성 인력 부족이 외국인 근로자를 ‘슈퍼 을’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에서 퇴직 공제부금(퇴직금)을 납부한 건설 근로자 중 19.6%가 외국인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없이는 ‘공사판’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선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과 고용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수도권으로 이직할 유인이 생긴다. 법상 고용허가제를 활용하지 못하는 중견기업이 이런 근로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직된 고용허가제의 일부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채용한 외국인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향후 채용 과정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고용한 직원이 무단결근, 상습 지각 등을 하더라도 해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에 대해 지역이나 업종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현행 고용허가제엔 나쁜 사업주와 나쁜 근로자를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외국인 공급 우위에 따른 사용주 고충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정영효/원종환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