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뜬금없는 기본소득 소동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원한 기본소득 관련 실험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미국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21~40세의 중·저소득층 3000명을 대상으로 1000명에게는 매달 10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2000명엔 매달 50달러를 나눠준 다음 이 두 그룹을 비교했다. 기본소득 1000달러를 받은 그룹은 50달러를 받은 그룹과 비교해 근로 시간이 1년에 8일 줄었고, 건강에 대한 긍정적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공돈이 생기면 일을 덜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민주당도 기본소득의 효과에 대한 실증연구를 할 목적으로 전북 순창군에 거주하는 4500여 명의 농민을 대상으로 올해 12월께 ‘농민 기본소득’ 연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기본소득의 효과가 올트먼이 한 실험에서처럼 꽤 알려져 있고, 지난 대선에서 기본소득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데도 새삼 또 연구한다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 혹은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개인에게 일정액의 현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18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토머스 페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꽤 오래된 발상이지만, 현재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없다.

기본소득은 초기에는 “지구는 인류의 공동 자산”이라는 기독교적 명제에 근거했으나, 최근에는 더욱 구체적인 논거가 제시되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주장을 한다. 첫째,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기술 진보는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므로 기본소득으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 기술 진보와 세계화는 임금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 셋째, 절대빈곤층은 저개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도 존재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절대빈곤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 이유로 거론되는 급격한 기술 진보에 의한 실업, 경제적 불평등, 절대빈곤은 경제 정책 전문가의 주요 관심 사안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인류가 급격한 기술 진보를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과거 방직기계, 자동차, 컴퓨터가 발명됐을 때도 대규모 실업에 대한 걱정이 있었으나 인류는 더욱더 많은 종류의 직업을 만들었다. 또한 로봇과 AI에 의한 자동화는 기술 진보 탓이기도 하지만 단순노동을 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는 기본소득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금을 거둬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일부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주는 것이 소득 격차를 더 잘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다.

또 기본소득을 통해 절대빈곤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 미국의 자선단체인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는 아프리카 일부 마을에서 매달 22달러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시행해 절대빈곤을 없애는 성과를 이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자선단체가 떠나면 절대빈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절대빈곤의 근본적 해결책은 주민들이 스스로 사는 길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또 다른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일부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연간 기본소득 금액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국가에서도 실현할 수 없는 액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 연 100만원을 주장했는데, 이 역시 연간 52조원을 필요로 한다. 국세 수입이 연간 360조원가량인 한국에서 매년 52조원의 추가 지출은 재정적자를 악화해 경제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마저 있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기본소득이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모험적 일을 추구할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등 경제적 자유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국민을 국가의 월급쟁이로 만들어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빼앗을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은 현시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철학 면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큰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