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우려되는 해리스식 물가 통제
“연방정부 차원에서 식료품 바가지(price gouging)를 제재하겠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물가를 잡겠다며 지난 16일 내놓은 경제 대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해리스 캠프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공급 가격이 낮아졌는데도 식료품 가격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2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이익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주(州)정부 차원에서는 바가지를 규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연방정부엔 명확한 규제가 없다. 해리스 캠프는 뉴욕타임스 등에 그가 취임하면 즉각 “대기업들이 식료품에서 과도한 기업 이윤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들을 부당하게 착취할 수 없다는 규칙을 명확하게 정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가격을 올리는 기업에 “강도 높은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때려 물가 잡겠다는 해리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연방’이라는 표현만 뺀다면 한국 정부의 발표라고 해도 깜빡 속을 참이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 유가가 떨어졌는데도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지 않고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기름값이 묘하다. 인하를 검토해 보라”고 했다. 김동수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는 물가 잡는 곳”이라고 선언하고 가격 불안 품목을 감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윤석열 정부도 작년 11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직접 살피겠다고 했다. 결국 ‘배추 과장’ ‘라면 사무관’을 두고 기업에 으름장을 놓자는 얘기다.

해리스 정책의 배경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물가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7%를 기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는 연평균 1.9%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요소가 물가를 밀어 올렸다.

닉슨 실패에서 교훈 얻어야

책임 소재가 어떻든 시민들이 고물가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전 개발을 통한 에너지 가격 인하를 내걸고 있는 트럼프 후보 측과 비교해 해리스 캠프에서 내걸 만한 물가 대책은 마땅치 않다. 백악관은 연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성과를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 피부에 와 닿진 않는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돈줄을 잠그는 방식으로 물가에 대응하는 것도 더 이상 쓰기 어려운 카드다. 검사 출신 해리스로서는 기업을 때려잡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장 손쉽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요란한 쇼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1년 재선을 앞두고 물가대책위원회를 꾸려 가격 통제에 나섰다. 포퓰리즘 정책 덕분에 재선에 성공했고, 석유 파동 여파가 컸던 1973년 다시 한번 가격 동결 카드를 썼다. 결과는 참담했다. 소와 돼지는 시장에 나오지 않았고 농부들은 닭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선 상품이 사라졌다. 1년여 만에 닉슨은 제도를 철회해야 했다. 10여 년 전 한국의 전담 공무원제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그럴 줄 알면서도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게 정치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