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인도 뭄바이서 열린 '수련의 성폭행·살해' 항의 시위. 연합뉴스
지난 16일 인도 뭄바이서 열린 '수련의 성폭행·살해' 항의 시위. 연합뉴스
인도의 한 국립병원에서 대학원생 수련의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으로 의사 파업이 종료됐지만, 일부 수련의들은 비응급 의료 서비스를 거부하는 등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주일 이상 시위와 집회가 이어지자 인도 대법원은 이달 20일 사건을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18일(현지시간) 인도 의사 협회(IMA)는 오전 6시부로 24시간 파업을 종료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공항과 유사한 보안 절차로 병원 직원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CCTV 설치, 보안 인력 배치, 근무 시간 개선 등이 대표적인 요구사항이다. IMA는 "인도 의사의 60%가 여성"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모든 의료 전문가는 직장에서 평화로운 분위기, 안전, 보안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도 최고 권위의 시민상인 '파드마 상'을 수여한 71명의 의사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즉각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후 병원들은 정상 운영을 재개했지만, 일부 수련의들은 비응급 의료 서비스는 계속해서 거부할 전망이다. '전(全)인도 레지던트 및 주니어 의사 공동행동 포럼'은 당국에 철저한 조사 및 용의자 체포를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전국적 파업을 계속하겠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응급 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는 제공하지만, 외래 진료나 일상적인 병동 업무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번 시위는 지난 9일 새벽 인도 동부 서벵골주 주도 콜카타 소재 국립병원인 RG 카르 병원에서 흉부 의학을 전공하는 31세 대학원생이 휴식을 취하던 중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알려지며 불거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는 약 20시간에 이은 근무 끝에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사건 이후 인도 경찰은 병원 직원 1명을 용의자로 체포했지만, 유가족은 집단 성폭행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IMA는 지난 13일 보건부 장관 JP나다에게 "열악한 근무조건, 비인간적인 업무 부담, 직장에서의 폭력이 현실"이라며 이를 규탄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보건부는 해당 서한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콜카타 외에도 뭄바이, 타밀나두, 텔랑가나 등 전국 주요 도시의 의사들도 시위를 벌이며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일주일 째 시위가 이어지자 인도 대법원은 재판부를 꾸려 이달 20일 사건 심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인도 현지 언론은 이번 사건이 2012년 뉴델리 시내버스에서 23세 여대생이 집단 강간과 살인을 당했던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이 사건은 인도에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신속한 재판을 허용하는 등 형사 사법 제도를 변경하는 계기가 됐지만, 인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