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모습 그대로…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변신한 채석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국 채석장 프로젝트
중국 채석장 프로젝트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는 다양한 과정이 수반된다. 그중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공간의 재료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양한 재료가 각각의 위치에서 공간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쾌감이 있었고, 일이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재료 하나하나가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같은 수종, 심지어 한 나무에서 만들어진 나무 패널들이라 해도 그 결은 제각각이었고, 같은 산에서 떼어져 온 돌 역시 미묘하게 다른 패턴을 보여주었다. 마감재로 사용되기 위해 반듯하게 가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료들이 생물 같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재료들 중 경제성, 내구성과 같은 이유로 선택되는 상당수의 것들은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도 그 표면에는 대부분 자연의 패턴을 인쇄하여 덮고 있다. 재료를 고르는 일에 한창 익숙해져 가던 당시에 가장 의문이 들었던 지점이 여기였다. 왜 사람들은 플라스틱 소재에까지 자연의 패턴을 입혀서 사용하는 걸까.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기술의 개발과 함께 새로운 마감재들이 꾸준히 개발되어 왔지만 아직은 나무나 돌 같이 자연에서 온 것들에 대한 선호를 뛰어넘는 것은 없어 보인다. 자연물이 마감재가 되기 위해서는 잘라내는 과정과 가공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렇게 인간들의 공간에 재료로 사용되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던 산이 그대로 공간이 된 사례가 있다. 중국의 진윈군에 위치한 채석장 프로젝트이다.
소용을 다하고 방치되어 있던 채석장들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이 프로젝트는 남아있는 채석장에 새로운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채석장 그 자체를 공간으로 활용한 것에서 눈길을 끈다. 여러 개의 채석장들을 품고 있는 산의 출발점에 위치한 '채석장 #10'은 세 면이 깎인 돌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특정 시간마다 채석 과정을 직접 시연해 보여준다. 이는 장소의 역사성을 현재에도 이어가는 의미를 가진다.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채석장 #9’는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래 뛰어난 음향을 즐기기에 적합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연장으로 재생되었다. 이 지역의 특색인 Wuju Opera를 위한 무대로 사용되기도 하는 이곳은 용도가 정해진 뒤 벽, 바닥, 난간을 조성할 때 공연에 보다 적합한 장소가 되도록 흡음을 고려하여 설계하였다. 인근에 위치한 ‘채석장 #8’은 책을 읽고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앞선 두 곳의 채석장보다 역동적인 공간감은 채석에 적합하지 않아 남아있던 돌들이 형성하고 있던 레벨 차이를 공간 조성에 활용함으로써 달성되었다. 총 5개의 레벨에는 새롭게 조성된 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있으며 여기에 책장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채석장의 동선을 만들고 있는 이 길의 난간에는 주재료로 돌과 유사한 색상의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최소한의 재료가 개입되어 돌이 만드는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였다. 이 채석장 프로젝트는 이처럼 더 이상 채석이 진행되지 않기에 남아있던 산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고,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더하여 공간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간의 계획 하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공간이 탄생하였다.
우선 이 곳은 인간을 위한 스케일이 아닌 자연의 스케일을 가지며, 채석이 진행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가 그대로 공간의 형태가 된다. 이는 인간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접근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손 또는 기계가 만들어낸 채석의 흔적이 산의 표면에 그대로 남아 공존하고 있으며, 이 흔적 뒤에는 켜켜이 쌓인 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구의 지각작용이 만들어낸 이 패턴은 어느 결 하나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대자연의 공간 안에서 과연 글자가, 그리고 공연이 눈에 들어올까 라는 생각이 든다.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내는 영상을 보면 정말로 거대한 산에서 '요만큼' 이라고 할 만한 일부를 잘라낸다. 산의 스케일에서 '요만큼'인 그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잘라내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산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지구의 한 표면이다. 이렇게 지구의 표면에서 요만큼씩을 잘라내어 가공을 하고, 우리 생활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한다. 그것을 인지하고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있는 돌판을 보면 지구의 표면을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에 어쩐지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후 인간들은 많은 것을 개발하고 만들어 왔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풍요 앞에서는 한없이 겸허해질 뿐이다. 자연을 플라스틱의 표면에 입혀서라도 공간에 입히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그러한 근원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글로벌K] 중국, 폐채석장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 KBS 2024.03.13.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같은 수종, 심지어 한 나무에서 만들어진 나무 패널들이라 해도 그 결은 제각각이었고, 같은 산에서 떼어져 온 돌 역시 미묘하게 다른 패턴을 보여주었다. 마감재로 사용되기 위해 반듯하게 가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료들이 생물 같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재료들 중 경제성, 내구성과 같은 이유로 선택되는 상당수의 것들은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도 그 표면에는 대부분 자연의 패턴을 인쇄하여 덮고 있다. 재료를 고르는 일에 한창 익숙해져 가던 당시에 가장 의문이 들었던 지점이 여기였다. 왜 사람들은 플라스틱 소재에까지 자연의 패턴을 입혀서 사용하는 걸까.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기술의 개발과 함께 새로운 마감재들이 꾸준히 개발되어 왔지만 아직은 나무나 돌 같이 자연에서 온 것들에 대한 선호를 뛰어넘는 것은 없어 보인다. 자연물이 마감재가 되기 위해서는 잘라내는 과정과 가공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렇게 인간들의 공간에 재료로 사용되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던 산이 그대로 공간이 된 사례가 있다. 중국의 진윈군에 위치한 채석장 프로젝트이다.
소용을 다하고 방치되어 있던 채석장들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이 프로젝트는 남아있는 채석장에 새로운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채석장 그 자체를 공간으로 활용한 것에서 눈길을 끈다. 여러 개의 채석장들을 품고 있는 산의 출발점에 위치한 '채석장 #10'은 세 면이 깎인 돌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특정 시간마다 채석 과정을 직접 시연해 보여준다. 이는 장소의 역사성을 현재에도 이어가는 의미를 가진다.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채석장 #9’는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래 뛰어난 음향을 즐기기에 적합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연장으로 재생되었다. 이 지역의 특색인 Wuju Opera를 위한 무대로 사용되기도 하는 이곳은 용도가 정해진 뒤 벽, 바닥, 난간을 조성할 때 공연에 보다 적합한 장소가 되도록 흡음을 고려하여 설계하였다. 인근에 위치한 ‘채석장 #8’은 책을 읽고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앞선 두 곳의 채석장보다 역동적인 공간감은 채석에 적합하지 않아 남아있던 돌들이 형성하고 있던 레벨 차이를 공간 조성에 활용함으로써 달성되었다. 총 5개의 레벨에는 새롭게 조성된 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있으며 여기에 책장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채석장의 동선을 만들고 있는 이 길의 난간에는 주재료로 돌과 유사한 색상의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최소한의 재료가 개입되어 돌이 만드는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였다. 이 채석장 프로젝트는 이처럼 더 이상 채석이 진행되지 않기에 남아있던 산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고,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더하여 공간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간의 계획 하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공간이 탄생하였다.
우선 이 곳은 인간을 위한 스케일이 아닌 자연의 스케일을 가지며, 채석이 진행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가 그대로 공간의 형태가 된다. 이는 인간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접근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손 또는 기계가 만들어낸 채석의 흔적이 산의 표면에 그대로 남아 공존하고 있으며, 이 흔적 뒤에는 켜켜이 쌓인 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구의 지각작용이 만들어낸 이 패턴은 어느 결 하나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대자연의 공간 안에서 과연 글자가, 그리고 공연이 눈에 들어올까 라는 생각이 든다.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내는 영상을 보면 정말로 거대한 산에서 '요만큼' 이라고 할 만한 일부를 잘라낸다. 산의 스케일에서 '요만큼'인 그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잘라내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산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지구의 한 표면이다. 이렇게 지구의 표면에서 요만큼씩을 잘라내어 가공을 하고, 우리 생활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한다. 그것을 인지하고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있는 돌판을 보면 지구의 표면을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에 어쩐지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후 인간들은 많은 것을 개발하고 만들어 왔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풍요 앞에서는 한없이 겸허해질 뿐이다. 자연을 플라스틱의 표면에 입혀서라도 공간에 입히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그러한 근원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글로벌K] 중국, 폐채석장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 KBS 2024.03.13.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