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명복을 빕니다, '세기의 청년' 알랭 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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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알랭 들롱 18일 별세… 향년 88세
제임스 딘, 록 허드슨, 말론 브랜도, 스티브 맥퀸, 로버트 레드포드, 폴 뉴먼….
이 세기의 미남 배우들의 미모를 합쳐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 놓는다면 아마도 알랭 들롱의 얼굴이 되지 않을까. ‘스크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배우(most beautiful man in the movies)'라는 타이틀은 알랭 들롱을 서술하는 데 있어 늘 수반되는 수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수식조차도 그의 아름다움을 형언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알랭 들롱은 그의 찬란한 미모로도 눈부신 존재였지만 무엇보다 영화에서 빛나는 배우였다.
특히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는 아마도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알랭 들롱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신분 상승과 사회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 점점 더 큰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노동계급 청년, ‘탐 리플리’역을 맡았다.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은 여태껏 목도하지 못한 레벨의 잘생김을 보유한 알랭 들롱이라는 청년 배우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롱에 의해 탄생한 캐릭터, 리플리 때문이었다. ‘리플리’는 그동안 대중영화에서 쉽게 판별되었던 악역, 혹은 부도덕한 인물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간교하고, 극악무도하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이면서도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다시 말해 선악의 이분법으로 판독할 수 없는, 지극히 영화적인 인물이었다. <태양은 가득히>가 전 세계의 평론가들과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40여년이 흘러 <리플리>로 리메이크된 것은 전적으로 알랭 들롱의 재능과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은 가득히>와 리메이크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는 글에서 영화평론가 난디니 람나스는 이렇게 평했다.
“<태양은 가득히>는 (원작의 작가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맷) 데이먼과 (데니스) 하퍼가 톰 리플리의 무자비함과 야망을 전달하는 데 ‘근접’했다면 알랭 들롱은 그의 신비로움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완벽하게 포착한다.” <태양은 가득히>로 알랭 들롱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가 되었지만, 미남 배우로만 그를 각인시킬 만한 영화들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더욱더 어두운 영화, ‘누아르’의 길로 향했다. <한밤의 암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 <암흑가의 세 사람>, <볼사리노>, <고독한 추적> 등 들롱은 다수의 누아르 영화들을 선택했고, 이 작품들은 일약 "프렌치 누아르"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눈부신 외모로 대중의 집중을 받은 배우의 다음 행보로서 ‘누아르’는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이 영화들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범죄자, 악인 캐릭터들은 사실상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가 진일보한 버전이다. 중절모와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로 얼굴을 반쯤 가린 들롱의 캐릭터는 탐 리플리가 그랬던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악당이었다. 이후 들롱은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재기작인 <카사노바>에 참여했고 비교적 준수한 흥행 성적을 냈다. <카사노바> 그리고 그 후속편인 <카사노바의 귀환>은 들롱이 그의 전성기인 60년대와 70년대에 선택했던 예술 영화들 그리고 누아르 영화들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상업적인 대중영화였다.
그럼에도 그간 스크린에 등장했던 수많은 ‘카사노바’들 중 들롱의 카사노바가 가장 인상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버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단언컨대, 그의 유혹을 버텨 낼 여자는 지구상에 없다. 알랭 들롱의 커리어를 보고 있자면, 그의 ‘미모’가 때로는 저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신이 “스타가 아니라 배우 (I am not a star, I am an actor)"임을 늘 강조했고, “영화 속에서 한 모든 행위로 그의 삶을 증명했다 (everything I did in films, I truly lived)"고 말했다. 어쩌면 영화는 들롱에게 있어 ‘미모’라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장이자 전쟁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벌인 그 전투에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사악한 빌런으로, 신비로운 킬러로 당당히 승리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이 세기의 미남 배우들의 미모를 합쳐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 놓는다면 아마도 알랭 들롱의 얼굴이 되지 않을까. ‘스크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배우(most beautiful man in the movies)'라는 타이틀은 알랭 들롱을 서술하는 데 있어 늘 수반되는 수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수식조차도 그의 아름다움을 형언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알랭 들롱은 그의 찬란한 미모로도 눈부신 존재였지만 무엇보다 영화에서 빛나는 배우였다.
특히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는 아마도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알랭 들롱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신분 상승과 사회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 점점 더 큰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노동계급 청년, ‘탐 리플리’역을 맡았다.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은 여태껏 목도하지 못한 레벨의 잘생김을 보유한 알랭 들롱이라는 청년 배우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롱에 의해 탄생한 캐릭터, 리플리 때문이었다. ‘리플리’는 그동안 대중영화에서 쉽게 판별되었던 악역, 혹은 부도덕한 인물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간교하고, 극악무도하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이면서도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다시 말해 선악의 이분법으로 판독할 수 없는, 지극히 영화적인 인물이었다. <태양은 가득히>가 전 세계의 평론가들과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40여년이 흘러 <리플리>로 리메이크된 것은 전적으로 알랭 들롱의 재능과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은 가득히>와 리메이크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는 글에서 영화평론가 난디니 람나스는 이렇게 평했다.
“<태양은 가득히>는 (원작의 작가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맷) 데이먼과 (데니스) 하퍼가 톰 리플리의 무자비함과 야망을 전달하는 데 ‘근접’했다면 알랭 들롱은 그의 신비로움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완벽하게 포착한다.” <태양은 가득히>로 알랭 들롱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가 되었지만, 미남 배우로만 그를 각인시킬 만한 영화들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더욱더 어두운 영화, ‘누아르’의 길로 향했다. <한밤의 암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 <암흑가의 세 사람>, <볼사리노>, <고독한 추적> 등 들롱은 다수의 누아르 영화들을 선택했고, 이 작품들은 일약 "프렌치 누아르"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눈부신 외모로 대중의 집중을 받은 배우의 다음 행보로서 ‘누아르’는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이 영화들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범죄자, 악인 캐릭터들은 사실상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가 진일보한 버전이다. 중절모와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로 얼굴을 반쯤 가린 들롱의 캐릭터는 탐 리플리가 그랬던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악당이었다. 이후 들롱은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재기작인 <카사노바>에 참여했고 비교적 준수한 흥행 성적을 냈다. <카사노바> 그리고 그 후속편인 <카사노바의 귀환>은 들롱이 그의 전성기인 60년대와 70년대에 선택했던 예술 영화들 그리고 누아르 영화들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상업적인 대중영화였다.
그럼에도 그간 스크린에 등장했던 수많은 ‘카사노바’들 중 들롱의 카사노바가 가장 인상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버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단언컨대, 그의 유혹을 버텨 낼 여자는 지구상에 없다. 알랭 들롱의 커리어를 보고 있자면, 그의 ‘미모’가 때로는 저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신이 “스타가 아니라 배우 (I am not a star, I am an actor)"임을 늘 강조했고, “영화 속에서 한 모든 행위로 그의 삶을 증명했다 (everything I did in films, I truly lived)"고 말했다. 어쩌면 영화는 들롱에게 있어 ‘미모’라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장이자 전쟁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벌인 그 전투에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사악한 빌런으로, 신비로운 킬러로 당당히 승리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