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성과와 보상 체계
인간은 누구나 DNA 속에 자기 생존본능에 입각한 ‘이기심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극단적 이기심만 가진 게 아니다. 이타심도 동시에 같이 지닌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본능을 무시하는 어떠한 시스템이나 정책도 현실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만든 조직은 ‘성과와 보상’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죽은 조직으로 전락한다.

조직이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받아야 한다. 이는 잘 설계된 성과와 보상 체계를 통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선의의 경쟁이 촉발되고, 조직 전체의 성과와 발전이 담보된다.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에서 종래 관행을 타파하는 제도들을 시행했다. 지방법원장 선거제, 법관평가의 절대평가, 고등부장제 폐지 등 여러 제도를 신설했다. 그 결과 법원이 가지고 있던 성과와 보상 체계가 무너졌다.

소송 지연이라는 복병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선 법원의 소송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배석 판사당 주당 세 건씩만 판결문을 작성하는 관행으로 사건 종결 후 선고기일이 예전에 2~4주로 잡히던 것이 수개월까지 늘어지는 현상도 발생한다. 미제 사건 수도 줄어들지 않고 점차 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 지연 현상을 해결할 여러 방도 중에 그 핵심인 성과와 보상 체계를 제대로 말하는 곳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경쟁이 싫다고 모든 경쟁 요소를 없애면, 당장에는 다 같이 편할지는 모르지만 ‘공유지의 비극’ 현상이 싹터서 고비용·저효율 조직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법관의 재판업무를 무조건 빨리하라고 재촉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최근에 불어오는 인공지능(AI) 바람을 잘 활용하면 길이 열린다. 법관이 고통으로 여기는 판결문 작성 작업을 AI가 도와줄 수 있게끔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 시스템을 개발하자고 필자는 지난해부터 강조했다. 대법원에서도 그 도입 타당성 용역 사업을 시작했다.

이리되면 재판 지연 현상은 시스템에 의해서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설사 법원에 AI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허물어진 성과와 보상 체계는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법원이나 타 조직에서 성과와 보상 체계를 임의로 허무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공정하고 체계적인 성과와 보상 체계는 모든 조직이 성공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를 통해 조직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구성원은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디 법원 내부에 선의의 경쟁이 속히 복구돼 국민으로부터 사법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길로 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