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용적률 상향 혜택의 대가로 내놓는 기부채납(공공기여) 시설 용도를 두고 시와 주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어르신, 노숙인 등이 이용하는 복지시설에 대해 지역 주민의 비토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2000가구 이상 주거단지를 개발할 때 노인요양시설을 필수 설치시설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갈수록 복지시설 수요는 커지는데 주민 반발로 신규 공급이 어려워지자 내놓은 고육지책이지만 오히려 갈등만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활센터 이전 계획 철회한 강동구

서울 재건축 때 노인요양시설 의무 설치한다
20일 강동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달 천호동에 있던 강동지역자활센터를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아파트 단지 안 둔촌문화복지센터 건물로 이전하는 방안을 끝내 접기로 했다. 예비입주자들의 반대에 가로막힌 탓이다. 구 홈페이지와 담당 부서에 들어온 민원이 약 3000건에 달했다.

자활센터는 취약계층이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주로 저소득층과 기초생활수급자가 지원을 받지만 노숙인과 교정기관 출소자까지 대상에 포함돼 ‘혐오시설’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구가 기부채납받은 4층짜리 건물 1층에는 국공립어린이집·강동푸드뱅크마켓, 2층에는 강동지역자활센터, 3층에는 다함께돌봄센터·청소년지원센터, 4층엔 강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문제는 위치였다. 예비입주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집과 맞닿아 있고 영유아와 청소년이 오가는 건물에 자활센터가 생기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한 예비입주자는 “신분이 확실치 않은 불특정 다수가 출입한다면 같은 건물을 쓰게 될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는 결국 계획을 철회하고 대체 장소를 찾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낮 시간대 노인을 돌봐줄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과 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버케어센터를 두고도 주민 반발이 거센 편이다. 최근 여의도 신속통합기획사업 1호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선 데이케어센터 기부채납을 놓고 아파트 주민과 서울시가 대립했다. 시가 용적률 최대 400%, 최고 층수 65층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기여 시설로 노인 주간 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하자 주민들이 현수막까지 내걸고 반대했다.

다른 자치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구청 관계자는 “노숙인, 장애인, 어르신을 위한 시설을 새로 조성하려고 할 때 주민 반대가 불 보듯 뻔해 주거지랑 먼 외곽에 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공공기여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포기 못해”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시정철학인 ‘약자와의 동행’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복지시설 확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 상위법령 입법을 통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시는 지난 4월 2000가구 이상 주택 단지를 개발할 때 노인요양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단지 내 주민공동시설 범위에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하는 서울시 주택조례 개정안도 제출할 계획이다. 내년이면 65세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만큼 노인요양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말 기준 서울 내 노인 장기요양 인정 1·2등급 대상자는 2만5574명인 데 비해 요양시설 정원은 1만6999명(492개)으로 수요 대비 공급 충족률은 66.5%에 그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와 주민들이 강대강으로 부딪치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동산 소유주와 지방자치단체가 합리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주민들이 복지시설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식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