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가 오는 28일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22대 국회가 협치의 첫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특히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통과되면 전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반도체업계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다만 원전업계의 숙원 산업인 고준위 방폐장법을 비롯해 처리를 기다리는 민생 법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여야가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준위법·간호사법…시급한 민생법안 여전히 산적
20일 양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비공개 회담에서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통과에는 이견이 없음을 확인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업계 등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전력 관련 인허가 절차 간소화, 환경 영향 평가 특례 등을 담은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 발의됐으나 21대 국회에서도 정쟁에 밀려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는 22대 국회 들어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앞다퉈 내놓는 등 첨단산업 지원과 관련한 의견 일치가 늘어났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전력망을 확충하는 법안은 야당에서 발의됐지만 여당도 필요성을 공감해 왔다”며 “산업 경쟁력을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은 적극 통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전세사기특별법도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될 전망이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 대해서는 상속권을 배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육아휴직을 현행 1년에서 1년6개월로 연장하는 육아휴직 확대 법안, 상습 임금 체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등도 여야 간 특별히 이견이 없는 만큼 이번 본회의 통과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평가다.

다만 고준위 방폐장법은 또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방폐장법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폐물) 중간 저장시설 등을 건설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법안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은 풍력 사업 절차를 간소화하는 해상풍력법을 고준위법과 연계해 처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이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당장 이번 본회의에서는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인구전략기획부 설치 법안 역시 정부 조직 신설 방식을 놓고 아직까지 여야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간호사법은 통과 가능성이 커졌지만 추가 조율이 필요하다. 야당은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폐지 부분에 명시된 ‘고졸’을 ‘고졸 이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양당은 본회의 전 보건복지위 소위에서 이 부분을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정쟁에 몰두하던 여야가 다음주 본회의를 계기로 민생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22대 국회 개원 후 80여 일이 지났지만 여야가 합의 처리한 법안은 0건이다. 다만 이달 들어 양당의 원내수석부대표 및 정책위 의장이 8월 임시 국회 내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민생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정소람/배성수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