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도시 파리에서는 에펠탑도 옷을 갈아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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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
매일 밤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 새벽 1시까지 에펠탑은 황금색 조명이 켜지고 매시간, 5분간 별처럼 반짝인다.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에펠탑을 수백 번 본 파리 시민들도 에펠탑의 야경에 마법처럼 이끌려 환호를 지르고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매료되곤 한다.
에펠탑은 중요한 행사나 이벤트가 있을 때는 밤마다 화려한 예복을 꺼내 입는다. 유럽 연합 20주년 기념일에는 파란색 배경에 노란 별 12개가 그려진 유럽 연합 국기, 월드컵 축구 같은 국제행사 때는 프랑스 국기색 그리고 유방암 캠페인 기간 동안은 핑크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7년마다 옷을 갈아입는 에펠탑
밤에는 에펠탑이 화려한 조명의 파티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만 낮에도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펠탑은 1887년부터 2024년까지 7가지 색상의 옷을 20번 갈아입었다. 구스타브 에펠이 처음 지시한대로 에펠탑은 평균 7년마다 페인트칠을 새로했고, 현재 20번째 진행 중이다.
구스타브 에펠은 에펠탑 건축을 위해 그의 아틀리에에서 KIT(18,038개 철봉과 250만 개의 나사)를 제작하여 현장으로 옮겨 2년간 레고를 조립하듯 에펠탑을 쌓아 올렸는데 그때의 색상은 베니스 레드(Red Venice)였다. 1889년 세계 박람회 때는 적갈색(Red Brown) 에펠탑을 선보였으며 1892년에는 황톳빛 갈색(Brown Ocher)으로 바뀌었다.
1900년에 파리에서 세계박람회를 또다시 개최했는데 그때는 에펠탑 하단에 노란 오렌지(Orange Yellow)로 시작하여 상단에 밝은 노란색(Light Yellow)까지 다섯 톤의 그라데이션으로 단장되기도 했다. 1907년에는 노란 갈색(Yellow Brown)으로 변하고 1, 2차 세계대전 때문인지 1953년까지 오랜 기간 같은 색을 유지했으며 그 후 1954년부터 14년간 적갈색(Red Brown)으로 바뀌었다. 1968년부터 에펠탑 갈색(Eiffel tower Brown)이라고 불리는 색을 2019년까지 50년간 유지해 왔다. 2020년 20번째 페인팅 공사를 시작으로 2024년 완료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지연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2024년에 파리에서 100년 만에 올림픽이 다시 열리고 구스타브 에펠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가장 선호했다는, 1907년에 사용된 노란 갈색이 선정되었다. 에펠탑은 10,000톤의 무게를 넘으면 구조물이 휠 수도 있고 안전에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침식된 페인트를 다 긁어내고 다시 칠해야 한다. 그런데 긁어낸 페인트 중 1995년 사용한 페인트에서 인체에 해로운 납(plomb) 성분이 발견되어 페인트공들과 관광객들이 수십 년간 납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프랑스 정부는 현재 에펠탑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변함없는 패션의 정점이 된 에펠탑
낭만주의와 우아함을 구현한 에펠탑은 그 자체로 모던한 아방가르드의 상징물이 되었다.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는 에펠탑을 모델로 30개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1947년 뉴룩(New Look)이라는 첫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의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에펠탑을 선택했다. 프랑스에서는 에펠탑을 "철의 여인" (불어로 탑이 여성형이기 때문)이라고 부르는데 에펠탑과 디오르 모델의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의 실루엣은 서로가 융화되어 파리를 더욱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로 부각시켰다.
1965년 이브 생로랑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모델 광고사진을 선보여 우아하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했다. 또한 생로랑은 2018 봄/여름 패션쇼를 에펠탑 아래에서 진행하여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스팽글 드레스, 가죽 부츠로 패션 역사에 또 한 번 기록을 남겼다. 샤넬의 아트 디렉터였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샤넬 오뜨 꾸뛰르 2017-18 가을/겨울 쇼를 위해 유리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에펠탑 모형을 그랑 팔레(Grand Palais)에 설치하여 파리 감성의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 영화에서도 오래전부터 에펠탑은 파리의 낭만주의와 우아함을 상징하고 있다. 50년대 뮤지컬 코미디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 (An American in Paris)>에서 "파리는 예술, 사랑, 신앙과 같아서 설명할 수는 없고 그냥 느낄 수만 있다."라며 화려한 파리 생활을 에펠탑에 비유했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파리의 연인 (Funny face)>에서도 에펠탑 위에서 "봉주 파리"를 부르며 파리의 패션과 프렌치 감성을 맘껏 보여주었다. 현재 파리의 가장 큰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 (Emily in Paris)>에서 에밀리는 유명 프렌치 패션 디자이너에게 에펠탑이 "촌스럽다"라고 말한 후 자신의 실수를 금방 눈치채고 자신의 불어 실력이 좋지 않아 의견이 잘못 전달되었다고 서둘러 변명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8월 15일부터 시작된 시즌 4에서는 에밀리가 유명 프렌치 명품 브랜드들의 빈티지 옷을 입고 등장하고, 특히 오드리 헵번의 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아웃핏들을 선보인다고 한다. 에밀리가 파리의 예술과 패션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낭만적이고 꿈만 같은 화려한 파리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고 안타깝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브랜드들의 상업적인 광고 마케팅 시장이 되어버린 거 같아 조금은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에펠탑은 중요한 행사나 이벤트가 있을 때는 밤마다 화려한 예복을 꺼내 입는다. 유럽 연합 20주년 기념일에는 파란색 배경에 노란 별 12개가 그려진 유럽 연합 국기, 월드컵 축구 같은 국제행사 때는 프랑스 국기색 그리고 유방암 캠페인 기간 동안은 핑크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7년마다 옷을 갈아입는 에펠탑
밤에는 에펠탑이 화려한 조명의 파티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만 낮에도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펠탑은 1887년부터 2024년까지 7가지 색상의 옷을 20번 갈아입었다. 구스타브 에펠이 처음 지시한대로 에펠탑은 평균 7년마다 페인트칠을 새로했고, 현재 20번째 진행 중이다.
구스타브 에펠은 에펠탑 건축을 위해 그의 아틀리에에서 KIT(18,038개 철봉과 250만 개의 나사)를 제작하여 현장으로 옮겨 2년간 레고를 조립하듯 에펠탑을 쌓아 올렸는데 그때의 색상은 베니스 레드(Red Venice)였다. 1889년 세계 박람회 때는 적갈색(Red Brown) 에펠탑을 선보였으며 1892년에는 황톳빛 갈색(Brown Ocher)으로 바뀌었다.
1900년에 파리에서 세계박람회를 또다시 개최했는데 그때는 에펠탑 하단에 노란 오렌지(Orange Yellow)로 시작하여 상단에 밝은 노란색(Light Yellow)까지 다섯 톤의 그라데이션으로 단장되기도 했다. 1907년에는 노란 갈색(Yellow Brown)으로 변하고 1, 2차 세계대전 때문인지 1953년까지 오랜 기간 같은 색을 유지했으며 그 후 1954년부터 14년간 적갈색(Red Brown)으로 바뀌었다. 1968년부터 에펠탑 갈색(Eiffel tower Brown)이라고 불리는 색을 2019년까지 50년간 유지해 왔다. 2020년 20번째 페인팅 공사를 시작으로 2024년 완료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지연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2024년에 파리에서 100년 만에 올림픽이 다시 열리고 구스타브 에펠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가장 선호했다는, 1907년에 사용된 노란 갈색이 선정되었다. 에펠탑은 10,000톤의 무게를 넘으면 구조물이 휠 수도 있고 안전에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침식된 페인트를 다 긁어내고 다시 칠해야 한다. 그런데 긁어낸 페인트 중 1995년 사용한 페인트에서 인체에 해로운 납(plomb) 성분이 발견되어 페인트공들과 관광객들이 수십 년간 납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프랑스 정부는 현재 에펠탑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변함없는 패션의 정점이 된 에펠탑
낭만주의와 우아함을 구현한 에펠탑은 그 자체로 모던한 아방가르드의 상징물이 되었다.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는 에펠탑을 모델로 30개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1947년 뉴룩(New Look)이라는 첫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의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에펠탑을 선택했다. 프랑스에서는 에펠탑을 "철의 여인" (불어로 탑이 여성형이기 때문)이라고 부르는데 에펠탑과 디오르 모델의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의 실루엣은 서로가 융화되어 파리를 더욱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로 부각시켰다.
1965년 이브 생로랑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모델 광고사진을 선보여 우아하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했다. 또한 생로랑은 2018 봄/여름 패션쇼를 에펠탑 아래에서 진행하여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스팽글 드레스, 가죽 부츠로 패션 역사에 또 한 번 기록을 남겼다. 샤넬의 아트 디렉터였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샤넬 오뜨 꾸뛰르 2017-18 가을/겨울 쇼를 위해 유리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에펠탑 모형을 그랑 팔레(Grand Palais)에 설치하여 파리 감성의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 영화에서도 오래전부터 에펠탑은 파리의 낭만주의와 우아함을 상징하고 있다. 50년대 뮤지컬 코미디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 (An American in Paris)>에서 "파리는 예술, 사랑, 신앙과 같아서 설명할 수는 없고 그냥 느낄 수만 있다."라며 화려한 파리 생활을 에펠탑에 비유했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파리의 연인 (Funny face)>에서도 에펠탑 위에서 "봉주 파리"를 부르며 파리의 패션과 프렌치 감성을 맘껏 보여주었다. 현재 파리의 가장 큰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 (Emily in Paris)>에서 에밀리는 유명 프렌치 패션 디자이너에게 에펠탑이 "촌스럽다"라고 말한 후 자신의 실수를 금방 눈치채고 자신의 불어 실력이 좋지 않아 의견이 잘못 전달되었다고 서둘러 변명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8월 15일부터 시작된 시즌 4에서는 에밀리가 유명 프렌치 명품 브랜드들의 빈티지 옷을 입고 등장하고, 특히 오드리 헵번의 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아웃핏들을 선보인다고 한다. 에밀리가 파리의 예술과 패션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낭만적이고 꿈만 같은 화려한 파리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고 안타깝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브랜드들의 상업적인 광고 마케팅 시장이 되어버린 거 같아 조금은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