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드리의 솔루션북> 좋은 감독보다 좋은 사람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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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
미셸 공드리의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
제76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
미셸 공드리의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
제76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
고백건대, '이터널 선샤인'(2005)을 제외하면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신 공드리 작품의 특정 숏과 아이디어는 매우 사랑한다.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출연하는 '수면의 과학'(2006)의 커지는 손이라든가, 소설 <세월의 거품>을 원작으로 한 '무드 인디고'(2014)의 기중기에 매달려 날아가는 거품 모양의 비행선이라든가, 컴퓨터 그래픽이라면 그저 매끄러웠을 이미지를 수작업으로 구현하는 까닭에 모난 돌처럼 삐죽빼죽 더욱 인상 깊게 남아 공드리의 영화는 개봉할 때면 늘 챙겨본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마이크롭 앤 가솔린'(2015) 이후의 8년 만의 신작이다. 영어 원제는 ‘The Book of Solutions’으로 국내 제목에 공드리가 들어간 이유가 있다. 감독 이름이 브랜드가 됐을 정도로 국내에 팬층이 형성된 게 하나요, 공드리가 영화를 만들면서 겪은 바가 반영된 자전적인 작품이라서다.
공드리의 설명에 따르면 '무드 인디고'의 후반 작업을 하던 3개월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다루고 싶었다는데 특히 주변 사람들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 '공드리의 솔루션북'으로 진심 어린 사죄와 감사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고 한다. 그러니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주인공은 감독이다. 마크(피에르 니네)는 재미없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제작 중단에 몰린 신작 프로젝트를 살리고자 장비를 모두 챙겨 시골의 숙모 집으로 은신한다. 그의 영화를 지지하는 스태프 또한 마크의 숙모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마크의 영화적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모인 건데 스태프들은 틈만 나면 아이디어가 생겼다며 밤이고 낮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달 볶는 감독 때문에 못 살겠다. 마크는 감독의 명령인데 요청만 하면,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안 돼만 연발하는 스태프 때문에 폭발 일보 직전이다. 누가 잘못한 걸까. 영화 현장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이지만, 공드리의 입장은 확연하다. 영화 속 마크는 신경 쇠약에, 고집불통에, 독불장군이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수첩에 적으려고 운전 속도를 20~30km로 유지해 따라오는 차량의 운행을 방해하고, 새벽에 곤히 잠든 스태프를 깨워 세계적인 뮤지션 스팅을 음악 감독으로 섭외하라며 다그치고, 이와 관련해 네가 잘못했다는 숙모의 충고에 다시 스태프를 찾은 마크는 사과를 하려다 말고 왜 감독을 무시하냐며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여 주변을 경악하게 한다. 감독이 악마다. 악마(?)가 원하는 영화를 실현하겠다고 완성될 작품의 비전만 믿고 온갖 수모와 굴욕과 고통을 감내한 스태프야말로 천사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하고 호평을 받으면 감독과 배우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런 까닭에 스태프가 감각하는 '온갖 수모와 굴욕과 고통'과 같은 무관심에 가려진 아픈 기억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에서처럼 표현되지 않는다면 대중은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영역에 속한다. 공드리의 입장에서 스태프를 향한 감사와 사죄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에 영화만큼 적절한 매체는 없었던 셈이다.
특히나 공드리처럼 가늠하기 힘든 상상력을 감독의 주문에 의지하여 스태프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수작업으로 완성해야 하는 공정은 매뉴얼에 따라 공장식으로 이뤄지는 제품 개발과는 전혀 딴판의 노력과 능력과 고통의 감내를 필요로 한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에는 영화에 삽입할 음악을 두고 연주자들 앞에 선 마크가 굳이 지휘자를 해고하고 악보도 없이 머릿속에 든 멜로디를 설명해 작업하는 과정이 나온다. 영화는 코믹한 음악에 맞춰 이를 몽타주로 편집해 재미를 자아내는데 영화적 기법을 확 걷어내면 카오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질서한 풍경이다. 그게 미셀 공드리의 영화 현장이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공드리의 영화를 즐기지 못한 이유를 말이다. 완성된 작품은 편집이 되어 있어 무질서한 영화 현장을 감추지만, 공드리의 영화는 이야기나 주제, 배우들의 연기보다 공드리의 수공업 스타일과 아날로그 지향의 아이디어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를 작업한 스태프들의 혼란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비전을 실현해 낸 불굴의 투지와 직업의식이 완전히 증발하지 않고 스크린 밖으로 전해진다. 공드리의 영화 자체가 뒤죽박죽인 그의 머릿속과 그걸 실현하려 좌충우돌하는 영화 현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마크는, 그에게 투영한 공드리의 자아는 철저하게 ‘과녁’이다. 관객에게 욕먹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만든 캐릭터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의미의 과녁을 만들어 응시하도록 하는 인물이 마크를 영화적으로 보좌하는 스태프들이다. 공드리는 그 자신을 욕받이로 만들어 대신 사죄의 의미를 전하고, 극한 직업에 시달리는 스태프들의 사연에 많은 장면을 할애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 공드리는 창작에 대한 조언이 담긴 작은 책을 만든 적이 있고 '공드리의 솔루션북'에도 반영되어 있지만, 영화만큼이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말이 담긴 이 영화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공드리의 설명에 따르면 '무드 인디고'의 후반 작업을 하던 3개월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다루고 싶었다는데 특히 주변 사람들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 '공드리의 솔루션북'으로 진심 어린 사죄와 감사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고 한다. 그러니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주인공은 감독이다. 마크(피에르 니네)는 재미없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제작 중단에 몰린 신작 프로젝트를 살리고자 장비를 모두 챙겨 시골의 숙모 집으로 은신한다. 그의 영화를 지지하는 스태프 또한 마크의 숙모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마크의 영화적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모인 건데 스태프들은 틈만 나면 아이디어가 생겼다며 밤이고 낮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달 볶는 감독 때문에 못 살겠다. 마크는 감독의 명령인데 요청만 하면,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안 돼만 연발하는 스태프 때문에 폭발 일보 직전이다. 누가 잘못한 걸까. 영화 현장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이지만, 공드리의 입장은 확연하다. 영화 속 마크는 신경 쇠약에, 고집불통에, 독불장군이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수첩에 적으려고 운전 속도를 20~30km로 유지해 따라오는 차량의 운행을 방해하고, 새벽에 곤히 잠든 스태프를 깨워 세계적인 뮤지션 스팅을 음악 감독으로 섭외하라며 다그치고, 이와 관련해 네가 잘못했다는 숙모의 충고에 다시 스태프를 찾은 마크는 사과를 하려다 말고 왜 감독을 무시하냐며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여 주변을 경악하게 한다. 감독이 악마다. 악마(?)가 원하는 영화를 실현하겠다고 완성될 작품의 비전만 믿고 온갖 수모와 굴욕과 고통을 감내한 스태프야말로 천사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하고 호평을 받으면 감독과 배우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런 까닭에 스태프가 감각하는 '온갖 수모와 굴욕과 고통'과 같은 무관심에 가려진 아픈 기억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에서처럼 표현되지 않는다면 대중은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영역에 속한다. 공드리의 입장에서 스태프를 향한 감사와 사죄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에 영화만큼 적절한 매체는 없었던 셈이다.
특히나 공드리처럼 가늠하기 힘든 상상력을 감독의 주문에 의지하여 스태프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수작업으로 완성해야 하는 공정은 매뉴얼에 따라 공장식으로 이뤄지는 제품 개발과는 전혀 딴판의 노력과 능력과 고통의 감내를 필요로 한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에는 영화에 삽입할 음악을 두고 연주자들 앞에 선 마크가 굳이 지휘자를 해고하고 악보도 없이 머릿속에 든 멜로디를 설명해 작업하는 과정이 나온다. 영화는 코믹한 음악에 맞춰 이를 몽타주로 편집해 재미를 자아내는데 영화적 기법을 확 걷어내면 카오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질서한 풍경이다. 그게 미셀 공드리의 영화 현장이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공드리의 영화를 즐기지 못한 이유를 말이다. 완성된 작품은 편집이 되어 있어 무질서한 영화 현장을 감추지만, 공드리의 영화는 이야기나 주제, 배우들의 연기보다 공드리의 수공업 스타일과 아날로그 지향의 아이디어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를 작업한 스태프들의 혼란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비전을 실현해 낸 불굴의 투지와 직업의식이 완전히 증발하지 않고 스크린 밖으로 전해진다. 공드리의 영화 자체가 뒤죽박죽인 그의 머릿속과 그걸 실현하려 좌충우돌하는 영화 현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드리의 솔루션북'의 마크는, 그에게 투영한 공드리의 자아는 철저하게 ‘과녁’이다. 관객에게 욕먹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만든 캐릭터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의미의 과녁을 만들어 응시하도록 하는 인물이 마크를 영화적으로 보좌하는 스태프들이다. 공드리는 그 자신을 욕받이로 만들어 대신 사죄의 의미를 전하고, 극한 직업에 시달리는 스태프들의 사연에 많은 장면을 할애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 공드리는 창작에 대한 조언이 담긴 작은 책을 만든 적이 있고 '공드리의 솔루션북'에도 반영되어 있지만, 영화만큼이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말이 담긴 이 영화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