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 쿠렌치스-카스텔루치의 '돈 조반니' [여기는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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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의 음(音)미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3)
돈 조반니에겐 양면성을
등장인물에겐 다채로운 개성을 부여한 점 돋보여
관객이 캐릭터를 찾아가는 게임 같았던 <돈 조반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3)
돈 조반니에겐 양면성을
등장인물에겐 다채로운 개성을 부여한 점 돋보여
관객이 캐릭터를 찾아가는 게임 같았던 <돈 조반니>
▶▶▶[관련 리뷰] 빈필이 세계 지휘 거장들을 줄세우는 이맘때 이곳 [여기는 잘츠부르크]
▶▶▶[관련 리뷰] 넬손스 X 빈 필의 말러 9번, 발레리나 발걸음에 말발굽 소리까지 들렸다 [여기는 잘츠부르크]
▶▶▶[관련 리뷰] 104년 역사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음악 거장들 다 모인 2024년 총정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이다. 그동안 모차르트의 수많은 오페라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갔다. 올해는 <티토 황제의 자비>와 <돈 조반니>가 공연되었는데 단연 화제작은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가 지휘, 유토피아 오케스트라 연주,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가 연출한 버전의 <돈 조반니>였다. <돈 조반니(1787)>는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으로 모차르트가 1787년에 작곡한 오페라다. 모차르트 오페라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1786)>, <코지 판 투테(1790)>와 함께 다 폰테 3부작으로 전해지며, 프라하에서 초연 후 대성공을 거둬 음악가 모차르트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한 작품이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운 아리아와 익살맞은 레치타티보가 대구를 이루면서, 극의 아름다움과 웃음을 더한다.
104년 역사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정말 다양한 해석과 엄청난 무대로 유산을 쌓아 온 오페라계의 대표선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축제극장 무대에서 카라얀과 무티가 <돈 조반니>를 지휘했고, 그 해마다 ‘최고’, ‘전설’, ‘완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권위와 명성을 이어온 무대에서 선배 예술가들이 해석했던 고전적인 방식으로 <돈 조반니>를 표현한다면, 관객들은 고리타분하게 느낄 것이다.
쿠렌치스-카스텔루치 콤비는 <돈 조반니>를 ‘정말 이 작품이 240여년 전의 오페라라고?’ 생각할 정도로 화끈하고 극단적으로 재창조해낸다. 클래식 음악이 예술가들의 해석으로 다른 생명력과 지속력을 가지는 예술이라는 걸 감안할 때, 이 둘의 전략은 영리하고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아카데미 시상식 같았던 저녁의 대축제극장
낮에 빈 필이 공연했던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밤의 대축제극장은 성대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루부탱, 발렌티노, 지미추 등 온갖 하이힐을 신은 여인들과 로로피아나와 헌츠맨 수트를 걸친 남자 관객들이 빈번히 눈에 띈다. 심지어 번쩍번쩍거리는 보석과 마치 이 축제의 공식 스폰서가 어느 브랜드인지 알고 있다고 양 롤렉스 시계를 찬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관객들의 호화로운 옷차림 때문에 대축제극장은 사람 수가 객석보다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모든 <돈 조반니>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해석
페스티벌 기간 중 총 7회 공연
202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총 7번 공연된 오페라 <돈 조반니>는 거의 모든 좌석이 매진이었고, 나는 11일 저녁 공연으로 예매했다. 이번 공연은 202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쿠렌치스-카스텔루치 콤비가 무대에 올렸던 <돈 조반니>의 개정판이다.
당시, 돈 조반니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아리아 ‘그대 손을 맞잡고 (La ci darem la mano)’ 에서 나체 여성이 등장했던 것과 체를리나가 노래한 ‘불쌍한 당신 (Vedrai, carino)’에서 배경에 과도했던 여성들의 탈의 장면 그리고, 불필요한 소품 사용과 지나친 의미 부여로 원작을 많이 벗어났다는 등의 피드백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런 부분들을 정교하고 단정하게 다듬어 업그레이드된 <돈 조반니> 2024버전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제 클래식의 파괴적 혁신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포스트모더니즘 무대예술 최전선에 있는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현재까지 공연된 모든 <돈 조반니>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3시간 40분의 마법과 같은 시간을 경험해보자.
파격, 파괴, 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칠 듯이 아름다운 오페라 <돈 조반니>
그랜드피아노를 무대로 떨어트리고 염소, 복사기, 승용차, 마차, 농구공, 비키니 입은 할아버지 등을 등장시켜
막이 오른다. 코린토스 양식의 거대한 기둥 사이로 성당에서 볼 법한 큰 그림들이 걸려있다. 무대에 놓여진 단상과 예수 재단화를 기준으로 긴 의자들이 좌우대칭으로 정돈되어 있다. 전반적인 구도가 바로크적이라 앞으로 눈 앞에 펼쳐질 오페라 <돈 조반니>의 원형을 상기시키는 듯 신성한 느낌도 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무대에는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이 아닌, 크레인과 정비공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기껏 설치된 모든 소품들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림, 의자, 소품으로 꽉 찼던 무대는 텅 비어가고, 중앙에 있던 예수 재단화조차도 철거된다. 그때,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서곡을 연주한다.
엄중한 교단이 해체된 후 (실제) 염소 한 마리가 무대 양쪽 끝을 횡단한다. 지금까지 심각하고 엄중했던 분위기가 작은 창조물 하나로 웃음바다가 된다.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부파적 상징이자, 오페라의 1막의 시작이다. 잠깐, 오페라 <돈 조반니>에 염소라니. 예수 재단화라니. 승용차, 푸들, 마차, 하이힐, 복사기, 농구공, 무대 꼭대기에서 중앙으로 내리꽂아 파괴되는 그랜드 피아노 심지어 비키니를 걸친 할아버지의 등장이라니. 무대 하나하나가 파격적이고, 형식 파괴적이다. 특히, 레포렐로가 돈나 엘비라에게 유럽 전역에서 돈 조반니가 놀아난 여자들이 무려 2,065명(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 스페인 1,003명)이 된다고 줄줄이 읊는 아리아인 ‘카탈로그의 노래 (Madamina, il catalogo)’에서 통상적으로 수첩이나 책(카탈로그)이 사용되던 것을 복사기와 여성의 가발로 연출해 시각적 신선함을 줬다. 마제토와 결혼을 앞둔 여인 체를리나가 돈 조반니와 함께하는 아리아 ‘그대 손을 맞잡고’에서 한 그루의 나무와 붉은 밧줄을 활용해 관계를 옭아매고, 벗어나려는 심리를 동시에 표현한 것은 획기적이었다. 통상적으로 돈 옥타비오는 <돈 조반니> 전반에 걸쳐 돈나 안나를 사랑하는 약혼자로 등장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구구절절한 아리아만 부르다가 극의 피날레를 맞는 가장 밋밋한 캐릭터로 간주되곤 한다. 카스텔루치는 돈 옥타비오가 등장할 때마다 의상과 분장 그리고, 강아지 크기 등을 다르게 하여, 그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상태를 역동적으로 표현해냈다. 이 오페라의 절정은 2막에서 돈 조반니가 자신이 죽인 기사장의 석상과 대면 후 파멸로 치닫는 부분이다. 카스텔루치는 돈 조반니 배역의 다비데 루치아노(Davide Luciano)에게 석상 역할도 동시에 부여하면서 (대개는 다른 배우가 연기) 자아 분열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함께 표현해냈다. 이는 숨 쉴 틈 없이 성급하고, 과잉된 활력을 주체하지 못해 타인을 파괴하던 돈 조반니가 결국 자신도 파멸로 치닫는다는 극의 전체적인 뉘앙스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내기에 적합한 장치였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인 것이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돈 조반니>는 관객들이 백색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게임 같았다. 이게 과연 얼마나 모차르트 작품의 원형과 맞닿아 있느냐에 대한 삐딱한 시선보다 <돈 조반니>가 현재에 이르러 이렇게까지 과감해질 수 있다는 놀라움이 더 컸던 공연이었다.
[202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돈 조반니> 트레일러 보러가기]
이진섭 칼럼니스트
▶▶▶[관련 리뷰] 넬손스 X 빈 필의 말러 9번, 발레리나 발걸음에 말발굽 소리까지 들렸다 [여기는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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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이다. 그동안 모차르트의 수많은 오페라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갔다. 올해는 <티토 황제의 자비>와 <돈 조반니>가 공연되었는데 단연 화제작은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가 지휘, 유토피아 오케스트라 연주,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가 연출한 버전의 <돈 조반니>였다. <돈 조반니(1787)>는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으로 모차르트가 1787년에 작곡한 오페라다. 모차르트 오페라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1786)>, <코지 판 투테(1790)>와 함께 다 폰테 3부작으로 전해지며, 프라하에서 초연 후 대성공을 거둬 음악가 모차르트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한 작품이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운 아리아와 익살맞은 레치타티보가 대구를 이루면서, 극의 아름다움과 웃음을 더한다.
104년 역사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정말 다양한 해석과 엄청난 무대로 유산을 쌓아 온 오페라계의 대표선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축제극장 무대에서 카라얀과 무티가 <돈 조반니>를 지휘했고, 그 해마다 ‘최고’, ‘전설’, ‘완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권위와 명성을 이어온 무대에서 선배 예술가들이 해석했던 고전적인 방식으로 <돈 조반니>를 표현한다면, 관객들은 고리타분하게 느낄 것이다.
쿠렌치스-카스텔루치 콤비는 <돈 조반니>를 ‘정말 이 작품이 240여년 전의 오페라라고?’ 생각할 정도로 화끈하고 극단적으로 재창조해낸다. 클래식 음악이 예술가들의 해석으로 다른 생명력과 지속력을 가지는 예술이라는 걸 감안할 때, 이 둘의 전략은 영리하고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아카데미 시상식 같았던 저녁의 대축제극장
낮에 빈 필이 공연했던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밤의 대축제극장은 성대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루부탱, 발렌티노, 지미추 등 온갖 하이힐을 신은 여인들과 로로피아나와 헌츠맨 수트를 걸친 남자 관객들이 빈번히 눈에 띈다. 심지어 번쩍번쩍거리는 보석과 마치 이 축제의 공식 스폰서가 어느 브랜드인지 알고 있다고 양 롤렉스 시계를 찬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관객들의 호화로운 옷차림 때문에 대축제극장은 사람 수가 객석보다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모든 <돈 조반니>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해석
페스티벌 기간 중 총 7회 공연
202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총 7번 공연된 오페라 <돈 조반니>는 거의 모든 좌석이 매진이었고, 나는 11일 저녁 공연으로 예매했다. 이번 공연은 202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쿠렌치스-카스텔루치 콤비가 무대에 올렸던 <돈 조반니>의 개정판이다.
당시, 돈 조반니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아리아 ‘그대 손을 맞잡고 (La ci darem la mano)’ 에서 나체 여성이 등장했던 것과 체를리나가 노래한 ‘불쌍한 당신 (Vedrai, carino)’에서 배경에 과도했던 여성들의 탈의 장면 그리고, 불필요한 소품 사용과 지나친 의미 부여로 원작을 많이 벗어났다는 등의 피드백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런 부분들을 정교하고 단정하게 다듬어 업그레이드된 <돈 조반니> 2024버전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제 클래식의 파괴적 혁신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포스트모더니즘 무대예술 최전선에 있는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현재까지 공연된 모든 <돈 조반니>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3시간 40분의 마법과 같은 시간을 경험해보자.
파격, 파괴, 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칠 듯이 아름다운 오페라 <돈 조반니>
그랜드피아노를 무대로 떨어트리고 염소, 복사기, 승용차, 마차, 농구공, 비키니 입은 할아버지 등을 등장시켜
막이 오른다. 코린토스 양식의 거대한 기둥 사이로 성당에서 볼 법한 큰 그림들이 걸려있다. 무대에 놓여진 단상과 예수 재단화를 기준으로 긴 의자들이 좌우대칭으로 정돈되어 있다. 전반적인 구도가 바로크적이라 앞으로 눈 앞에 펼쳐질 오페라 <돈 조반니>의 원형을 상기시키는 듯 신성한 느낌도 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무대에는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이 아닌, 크레인과 정비공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기껏 설치된 모든 소품들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림, 의자, 소품으로 꽉 찼던 무대는 텅 비어가고, 중앙에 있던 예수 재단화조차도 철거된다. 그때,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서곡을 연주한다.
엄중한 교단이 해체된 후 (실제) 염소 한 마리가 무대 양쪽 끝을 횡단한다. 지금까지 심각하고 엄중했던 분위기가 작은 창조물 하나로 웃음바다가 된다.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게 보내는 부파적 상징이자, 오페라의 1막의 시작이다. 잠깐, 오페라 <돈 조반니>에 염소라니. 예수 재단화라니. 승용차, 푸들, 마차, 하이힐, 복사기, 농구공, 무대 꼭대기에서 중앙으로 내리꽂아 파괴되는 그랜드 피아노 심지어 비키니를 걸친 할아버지의 등장이라니. 무대 하나하나가 파격적이고, 형식 파괴적이다. 특히, 레포렐로가 돈나 엘비라에게 유럽 전역에서 돈 조반니가 놀아난 여자들이 무려 2,065명(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 스페인 1,003명)이 된다고 줄줄이 읊는 아리아인 ‘카탈로그의 노래 (Madamina, il catalogo)’에서 통상적으로 수첩이나 책(카탈로그)이 사용되던 것을 복사기와 여성의 가발로 연출해 시각적 신선함을 줬다. 마제토와 결혼을 앞둔 여인 체를리나가 돈 조반니와 함께하는 아리아 ‘그대 손을 맞잡고’에서 한 그루의 나무와 붉은 밧줄을 활용해 관계를 옭아매고, 벗어나려는 심리를 동시에 표현한 것은 획기적이었다. 통상적으로 돈 옥타비오는 <돈 조반니> 전반에 걸쳐 돈나 안나를 사랑하는 약혼자로 등장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구구절절한 아리아만 부르다가 극의 피날레를 맞는 가장 밋밋한 캐릭터로 간주되곤 한다. 카스텔루치는 돈 옥타비오가 등장할 때마다 의상과 분장 그리고, 강아지 크기 등을 다르게 하여, 그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상태를 역동적으로 표현해냈다. 이 오페라의 절정은 2막에서 돈 조반니가 자신이 죽인 기사장의 석상과 대면 후 파멸로 치닫는 부분이다. 카스텔루치는 돈 조반니 배역의 다비데 루치아노(Davide Luciano)에게 석상 역할도 동시에 부여하면서 (대개는 다른 배우가 연기) 자아 분열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함께 표현해냈다. 이는 숨 쉴 틈 없이 성급하고, 과잉된 활력을 주체하지 못해 타인을 파괴하던 돈 조반니가 결국 자신도 파멸로 치닫는다는 극의 전체적인 뉘앙스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내기에 적합한 장치였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인 것이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돈 조반니>는 관객들이 백색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게임 같았다. 이게 과연 얼마나 모차르트 작품의 원형과 맞닿아 있느냐에 대한 삐딱한 시선보다 <돈 조반니>가 현재에 이르러 이렇게까지 과감해질 수 있다는 놀라움이 더 컸던 공연이었다.
[202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돈 조반니> 트레일러 보러가기]
돈 조반니의 극적 요소는 코믹함, 극적인 것과 어두운 것, 초자연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이 오페라의 특별함은 모든 수단, 모든 구절이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 로메오 카스텔루치 (Romeo Castell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