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칼 샌드버그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물었네.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유명한 회사 사장들에게도 물었네.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마치 내가
농담이라도 하는 듯 웃음을 지었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데스플레인즈 강을 따라 산책 나갔네.
그리고 보았네, 한 무리의 헝가리 사람들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나무 밑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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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 시인이 발견한 행복 [고두현의 아침 시편]
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1878~1967)의 시입니다.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무척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대장장이인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지요. 그는 11세부터 이발소 급사로 일했고, 우유배달과 벽돌공, 농장 일꾼 등 온갖 밑바닥 일을 다 했습니다.

스무 살 때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자 자원해서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이후 신문 기자가 되어 취재 현장을 누비면서 시를 썼습니다. 문예지에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면서 ‘시카고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시집과 링컨 전기로 퓰리처상을 연거푸 받았습니다.

이 시는 38세 때 펴낸 첫 시집 <시카고 시편>에 실린 것으로, 행복의 의미를 한가로운 가족의 모습과 함께 묘사한 것입니다. 지식과 명예를 상징하는 교수,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사장이 아니라 휴일 오후 가족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헝가리 이민자들로부터 행복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이지요.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줄 압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인간은 하루에 6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성공, 돈, 진학, 결혼, 자녀 문제 등 온갖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요. 문제는 그중 94% 이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부질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의학계에서도 과로로 죽는 사람보다 근심거리로 생긴 병 때문에 사망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보고했지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무슨 일에서든 ‘행복의 부싯돌’을 발견하기 힘든 겁니다.

긍정심리학을 전공한 미국 UCR의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그래서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긍정적인 자세부터 가지라고 권합니다. 행복의 설정값은 유전적 영향 50%, 환경 10%, 후천적 활동 40%의 비율이므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쾌하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빠져라. 몰입도를 높이려면 자신의 능력과 작업의 수준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평상시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과 지속적인 배움도 당신을 황홀한 집중 상태로 이끈다. 여여(如如)한 낙관주의와 친절의 실천 역시 기쁨을 선사한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그는 225건의 실험을 통해 행복해지면 에너지와 창의성이 향상되고 면역 체계가 개선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직장, 국가, 사회에 큰 보상을 안기는 순기능까지 있다고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용서의 기술도 잘 익혀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재니스 A. 스프링은 행복한 사람들은 용서의 기술도 잘 익힌다고 말합니다. 그가 들려주는 일화를 볼까요. 한 젊은 여인이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자세히 보니 얼굴 한쪽이 마비돼 있었지요. “어쩌다 그렇게 됐나요?” “저도 모르겠어요. 날마다 죽고 싶을 뿐이에요.”

목사는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한참 만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예. 시어머니도 밉고, 시아버지도 밉고, 시누이도 밉고… 남편도 미워 죽겠습니다.”

“그랬군요.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안면마비까지 왔을까…. 그 심정 이해합니다. 자, 이제 미워할 만큼 미워했으니 지금부터는 그분들을 한 번 용서해봅시다. 억지로 ‘사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용서’하는 겁니다.”

목사의 기도가 이어졌고, 잠시 후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비된 한쪽 얼굴이 본래대로 돌아온 것입니다. 용서의 힘은 이렇게 강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지요. 그는 “용서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뉘우치지 않는 가해자를 억지로 용서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용서하지 않을 시간을 충분히 주라’고 권합니다. 그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수용’으로 넘어갈 수 있고 나아가 ‘순수한 용서’를 주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놀이터의 두 아이 얘기도 매우 상징적입니다. 모래밭에서 잘 놀던 녀석이 화를 내며 장난감 트럭으로 다른 아이를 공격하자 아이는 “다신 너하고 안 놀아”라며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10분쯤 지났을 때 두 아이는 서로 공을 던지며 잘 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를 보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죠?”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자기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이지요.”

행복과 용서라는 이름의 보물상자를 절묘하게 비춰주는 사례들입니다. 퓰리처상 수상 시인의 행복론도 이와 같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사소한 즐거움을 키워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행복을 방해하는 증오와 분노 같은 걸 넘어서는 ‘용서의 기술’까지 익히는 것, 천진한 아이의 마음처럼 자신을 맑게 헹구며 휴일 오후의 가족 소풍에서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