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AI가 '빅테크의 무덤'이 된 이유
미국 정부나 사용하던 ‘겁나게’ 비싼 컴퓨터를 일반 기업도 구매할 수 있게 해준 정보기술(IT)의 지존 IBM, 그들은 인공지능(AI)에 미래가 있다는 걸 진작에 간파했다. 엄청난 ‘사내’ 연구소에 인재들을 모으고 예산을 퍼부어 딥블루와 왓슨을 등판시키며 체스와 퀴즈대회에서 인간을 이겼다. 최근까지도 의사를 이겨보겠다며 기염을 토했었다. 그러다 구글이 창업 4년 차 신생 딥마인드를 인수하며 판도를 엎어버렸다. IBM의 존재감은 그렇게 사라졌다.

바둑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AI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구글의 ‘폐쇄’ 방침이 불만이던 청년들이 오픈AI를 창업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거기에 투자와 협업을 하면서 다시 판을 엎었다. 구글은 바둑 삼매경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걸 몰랐을까? 최근엔 망신살의 연속이다. 천하의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이나 자금, 인재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모든 게 부족한 스타트업이 관여해야 판이 뒤집어지는 걸까?

‘발명의 왕’인 에디슨의 최고 발명품은 무엇일까? 전구, 축음기, 아니면 영사기? 내 생각엔 그런 걸 대량으로 찍어낸 ‘발명 공장’ 멘로파크연구소인 것 같다. 에디슨은 그곳에 인재들을 고용하고 ‘작은 발명은 열흘에 하나, 큰 발명은 6개월에 하나씩 해낼 것’이라고 허풍을 쳤다. 그런 허풍,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DNA로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그는 개인의 천재성이나 우연에서 출현하던 발명을 연구소를 통해 시스템화했다. 저거 되겠다고 판단한 ‘금융 왕’ 존 피어폰트(JP) 모건이 거금을 투자했고 허풍이 하나씩 실현되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 주에 80시간씩 영혼을 갈아 넣으며 ‘발명하는 법’을 배운 이가 포드와 테슬라다. 그즈음에 과학자들을 고용해 사내 실험실을 차린 카네기는 철강 시장을 평정하고 ‘철강왕’이 됐다. ‘왕’들의 성공을 보면서 사내연구소 모델이 빠르게 모방됐다. 그렇게 사내연구소가 미국 기업의 기본 사양이 되면서 유럽 기업들을 누르고 최강으로 등극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탁월한 엔지니어가 모인 사내연구소의 축적된 연구 성과와 풍부한 자금은 강력한 혁신 엔진이었다.

하지만 엔진도 오래되면 오일이 새는 법! ‘제록스하다’와 ‘복사’가 같은 의미인 독점기를 즐기던 제록스도 그런 연구소를 갖고 싶었다. 그들은 단기적 사고에 빠진 경영진의 간섭을 줄이겠다고 뉴욕 본사와 멀리 떨어진 실리콘밸리에 최고의 연구소를 세웠다. 그런데 멀어도 너무 멀었다. 전설적인 그 연구소는 인터넷 초기 기술, 마우스, 레이저프린터, 그리고 최초의 PC(알토)까지 속속 내놨다. 그런데 너무 멀어서일까? 뉴욕의 경영진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잘 몰랐다. 그 연구소를 견학하던 잡스가 일부 기술을 훔쳐 매킨토시를 내놓고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를 베껴 윈도를 출시하는데도 제록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덕에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연결되는 활짝 열린 ‘사외’ 발명공장, 실리콘밸리가 했다. 훔치고 베끼는 ‘놈’들을 막겠다며 꽁꽁 벽을 친 사일로 조직, 상사들이 밀어붙이는 연구 노동에 착취당하던 사내연구소의 인재들이 속속 합류했다. 변화를 간파한 미국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통해 ‘투자 5년 안에 성과가 나오면 실패’라는 원칙 아래 대학과 창업자에게 장기 투자했다. 이쯤 되니 대학생들부터 가로세로로 막힌 사내연구소에서 면벽수행하며 청춘을 허비할 생각은 딱 접고 창업 대박을 꿈꾸게 된다. 뭐 그러다 성공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사례가 잦아지니 의대만 가지 않고 공대로도 가고, 전 세계의 천재들이 그곳으로 몰려들며 에디슨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방법론이 확립됐다. 되는 미국은 어떻게 해도 되는 걸까? 부럽다.

IBM의 전설은 기억에서 멀어졌고, 대기업이 되면 역동성이 사라진다는 경험을 까먹은 구글도 힘이 빠졌다. 한때는 비기였던 사내연구소의 축적된 노하우는 인터넷을 통한 무한 협업을 이기기 어렵고, 풍부한 자금도 벤처캐피털 중심의 열린 생태계를 당할 수 없다. 딥마인드와 오픈AI의 돌파, 그리고 다시 답답해지는 AI의 진보를 뚫어내는 것도 한때는 비기였지만 이제는 기본 요건이 돼버린 사내연구소는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