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에 모인 美 Fed…"죽느냐 사느냐 중앙은행이 문제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9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는 가운데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이 개막했다. 2년 전 이 행사에서 강도 높은 매파(통화 긴축 선호) 발언으로 시장에 충격을 줬던 제롬 파월 의장의 연설은 23일(현지시간) 예정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Fed의 인플레이션 전투의 마지막 단계는 파월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경제 확장기가 죽느냐 사느냐는 Fed의 향후 몇 달치 행보에 달려있다"고 보도했다. '경제 확장기는 나이 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중앙은행에 의해 살해된다'는 오래된 격언을 소개하면서다.

강인함과 기민함 사이에 놓인 Fed

Fed는 3년 전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잘못 예측했었다. 이후 2022년 파월 의장은 잭슨홀 행사 연설에서 Fed의 판단 미스를 인정하며 고강도 긴축을 예고했다. 그는 1980년대 Fed 의장이었던 폴 볼커의 예를 들며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경기 침체를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Fed는 2년에 걸쳐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했고,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 상단은 연 5.5%다.

Fed는 이제 침체 없이 미국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TS 롬바드의 다리오 퍼킨스 경제학자는 WSJ에 "이를 달성한다면 Fed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그들의 성공은 볼커 전 의장의 '강인함'과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기민함'을 동시에 이뤘다는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린스펀은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 호황기 당시 정치권의 긴축 요구를 거부한 의장이다.
잭슨홀에 모인 美 Fed…"죽느냐 사느냐 중앙은행이 문제로다"
파월 의장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잭슨홀에서 전례대로 기조연설을 한다. 잭슨홀 행사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 주최로 22일부터 사흘간 진행되며, 파월 의장 연설 외엔 모두 비공개로 진행된다. 약 한 달 뒤인 9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금융 시장은 파월 의장의 잭슨홀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날 발표된 FOMC의 지난달 의사록과 고용 지표 등을 토대로 9월 금리 인하를 확실시하고 있다. 7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위원들이 지표가 지속해서 예상대로 나온다면 다음 회의에서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 노동부는 작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연간 비농업 일자리 증가 폭이 종전에 발표된 수치보다 81만8000명(약 30%) 줄었다고 발표했다. 고용시장이 당초 파악됐던 것만큼 뜨거운 상황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물가 자극하는 공약 남발대선 앞두고 더 시름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융시장에선 다음 달 금리인하 확률을 100%로 본다. 인하 폭에 대해선 0.25%포인트가 76%, 빅컷(0.5%포인트 인하)은 24%로 갈린다. 월가에선 또 파월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9월 금리 인하 확률이 높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금리 인하 폭과 향후 속도에 관해서는 확언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WSJ는 Fed에는 앞으로 몇 달간 두 가지 경로가 있다고 전망했다. 하나는 다음 달부터 몇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내린 뒤 내년 초 경제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만약 경기가 급격히 침체하면 0.5%포인트씩 낮춰서 현재 연 5.25∼5.5%인 금리를 내년 봄에 연 3% 가까이 만들 수도 있다.
잭슨홀에 모인 美 Fed…"죽느냐 사느냐 중앙은행이 문제로다"
금리인하 여부(폭)을 둘러싼 견해는 Fed 위원들 사이에서도 계속 엇갈리고 있다. 이에 관해 웰스 파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이 브라이슨은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부진한 경제지표가 연이어 나오는 경우가 아니면 FOMC에서 금리 방향을 더 빨리 움직이는 합의가 이뤄질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WSJ는 "파월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선명한 메시지를 밝히지 않고 지나가면 (9월 6일 예정된) 8월 고용 보고서 발표 후의 상황에 더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파월 의장이 경기 경착륙 걱정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김칫국부터 마신 일이 될까 봐 '연착륙'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에둘러 말할 정도라고 WSJ는 전했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Fed의 금리 결정이 다음 미 행정부가 물려받을 경제 상황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다.

한편 파월 의장이 이번 연설에서 미국 대선 관련 위험에 관해 정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제 경제 부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아담 포센 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파월 의장이 연설에서 두 대선 후보의 공약이 모두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으며, 선거 결과에 따라 통화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