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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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방 분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이 '퀀텀 점프'(대도약)를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이 혁신 거점 도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유는 정치·경제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다른 지역 발전을 저해하면서, 결국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정치학회는 23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2024 한국정치학회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특별 대담에 나선 오 시장과 박 시장은 거점 도시를 육성하고 전방위에 걸쳐 중앙 정부의 힘을 이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朴 "요즘 정치, '깔찌뜯는다'...'강남류'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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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조 발제를 맡은 박 부산시장은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짜증난다. 부산 말로 '깔찌뜯는다'는 말이 있는데, 닭싸움하듯이 깔찌뜯는 정치가 국민들을 피로하게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박 시장은 다방면에 걸친 한국의 압축 성장을 거론하면서 정치·경제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한국이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로 꼽았다.

박 시장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한국의 경제발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극주의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1980~90년대부터 서울과 수도권 일극주의가 심화되면서 모든 기업과 자본, 인재가 서울로 몰리면서 다른 지역은 모두 침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 강남의 부동산 폭등은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서 강남으로 몰리는 수요 때문"이라면서 "지역의 엘리트들도 자식들을 다 강남으로 보내려고 하거나,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을 유행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강남 불패 신화'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이 굉장히 낮아진다. 서울뿐 아니라 거점 도시 육성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네트워크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지방 분권화를 해법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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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도권 청년들의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진다고 언급하면서 "지방에서 올라간 청년들은 금수저가 아닌 이상에야 3~4평 원룸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을 얻어도 출근 시간이 길다. 또 자기가 친구와 가족 등 사회적 관계의 지지를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겠나, 아이를 낳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기득권 세대가 만들어놓은 철통같은 지배구조에 대한 MZ(밀레니얼+Z), 젊은 세대의 생물학적 저항이 저출산이다. 이걸 해소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펴더라도 근원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박 시장은 현재 국가경영의 방향을 발전 국가에서 '공진국가'로 전환해야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혁신과 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유럽이 2008년에 미국과 GDP(국내총생산)가 거의 비슷했는데 지금 2배 이상 차이 난다"며 "미국은 계속 혁신 거점을 만들고 운동장을 넓게 쓰는 데 유럽은 전통적인 도시와 관료제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吳 "경쟁이 경쟁력…엘리트 공무원들 지자체로 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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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장은 '지방거점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박 시장의 발제를 듣고 "피맺힘과 간절함을 느꼈다"며 최근 식사 자리에서 박 시장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이번 발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오 시장은 "10년 뒤 1인당 국민 소득을 10만 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 전국을 수도권· 충청권·호남권·영남권 등 4개 초광역권으로 만들고, 중앙정부의 행정권과 입법 권한 등을 대폭 이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뛸 수 있는 미션을 마련해주고, 자기들 재량껏 특화된 전략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면 4개의 싱가포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의 총 GDP가 국가별 GDP 순위에서 각각 5위와 8위를 차지한다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도시가 지역 발전을 마음껏 추구했을 때 다른 도시들과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재정·교육·이민·고용 정책 등에 대한 지방 정부의 자율성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도 호소했다. 그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50대 50으로 개선해, 지방정부가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역 간 세수 격차는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공동세로 맞출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 중앙정부의 '엘리트' 공무원들, 특히 기획재정부 인력들을 각 지자체로 보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각 지방에 엘리트를 분산시켜 지역 발전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그 부서에서 시작해서 각 부처에서 끝난다. 그러나 순환하는 서울시 공무원들은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진다"며 "기재부 공무원들이 굉장히 엘리트들이고 유능하다. 4분의 1만 중앙에 남기고 4분의 3은 다 지방에 공무원 자체로 보내야 한다. 이런 큰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지방에서 자체적인 인력만 가지고 발전 전략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진행된 조화순 한국정치학회장(연세대 정치외교학과)과의 대담에서도 그는 "지방 의회 권한을 국회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광역화하고 숫자를 줄이는 등 통폐합할 것은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내정당 강화 등 정치개혁에 대해선 "개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통령 4년 중임를 하든,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하든 국회와 정당의 기능 정상화 없이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최근 지구당을 부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정치적 퇴행이다. 국회의원들이 공천 경쟁과 당론 종속에서 탈피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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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안보에 관해선 "문재인 정권 때는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 자체가 모호했다. 지금은 비교적 명확해졌다"면서 "중심은 잡되 유연하게 외교 전략을 펴야 한다. 중국과 굳이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할 필요는 없다는 게 미국의 정리된 생각인 것 같다. 나라 형편에 맞춰 위험을 분산시키는 디리스킹(리스크 관리)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도 국제 정세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현재로서는 한미일 관계를 활용해서 핵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가장 중요한 '딜'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오 시장이 대한민국 전체에 대한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헌법과 법률 개정이 필요한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을 비롯해 정치권 변화에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사실상 '대선 행보 본격화'라는 시선도 나온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