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 사업이 경기 하남시의 반대로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전력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동해안~수도권 송전망 사업을 하면서 종점 격인 하남 동서울변전소 내부에 송전망 옥내화와 증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변전소 인근 주민들이 증설에 반대하자 인허가권을 쥔 하남시가 전자파 문제와 주민 반대를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 전력 공급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총 600조원이 투자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한전은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이 연간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결국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다. 한전은 행정소송도 고려하고 있지만 소송 결과가 나오려면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과거 밀양 송전탑 건설 때처럼 사업이 장기 표류한다면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송전망 증설에 대한 주민 불안은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기우에 가깝다. 전력연구원 측정 결과, 동서울변전소 인근의 전자파 수준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서조차 전자파 수치는 0.02마이크로테슬라(T)로 편의점 냉장고에서 나오는 전자파(0.12T)보다 미미했다. 더구나 한전은 변전소 내 설비를 모두 실내로 옮길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자파는 지금보다 55~60% 감소한다고 한다.

이 사업은 변전소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행법상 주민 동의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남시가 주민 반대에 편승해 법령에도 없는 이유까지 들어가며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은 월권 소지가 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송전망 증설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국가 백년대계가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핵심 전력망을 알아서 하라고 한전에 떠넘기는 현행 제도도 문제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설득과 보상을 책임지도록 하는 국가기간전력망특별법이 발의돼 있지만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