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 하남 감일신도시에 있는 동서울변전소 앞 도로변에 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혁 기자
23일 경기 하남 감일신도시에 있는 동서울변전소 앞 도로변에 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혁 기자
“하남시가 불허했는데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허가를 내줄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수도권 송전 설비 부족으로)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더 짓는 수밖에 없습니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경기 하남시가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보내는 송전망의 최종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에 뒤늦게 퇴짜를 놓자 수도권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연 3000억원어치의 수도권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2047년까지 총 622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전 협의해 놓고도 ‘모르쇠’

하남시, 송전망 불허…한전 "전기료 年3000억 오를 것"
23일 하남 시민과 한국전력은 때아닌 ‘진실 게임’을 벌였다. 시민들은 한전이 하남시 감일지구 동서울변전소를 옥내화하겠다고 설득해 놓고 설비용량을 3.5배 늘리는 증설안을 끼워 넣었다고 반발했다. 설비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전자파가 많이 발생해 주민 건강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입장문을 내고 “하남시와 초기부터 옥내화뿐 아니라 증설안도 협의했고 작년 10월 24일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했다”고 반박했다. 하남시가 이날 “한전과 맺은 MOU를 해지한다”고 밝히며 진실 게임의 전말은 가려졌다. 주민 반발에 놀란 하남시가 협약을 스스로 깨 사전 협의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논란의 중심인 전자파 우려와 관련해서도 한전은 “변전소에서 가장 인접한 아파트 정문의 전자파 측정치는 0.02마이크로테슬라(μT)로 일반 편의점 냉장고에서 나오는 전자파(0.12μT)보다 낮다”고 반박했다. 증설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설비는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도 설명했다.

한전은 행정소송 등을 통해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남시 관계자는 “우리가 소송에서 지면 한전이 건축 허가를 다시 신청할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사업이 지연되면 매년 3000억원의 전력 구입비가 늘어나 수도권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 산업용 전기 공급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필요한 전력 10GW 가운데 3GW를 신규 화력발전소 6기로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 7GW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와야 한다.

○전력 생산 지역 편중이 발단

동서울변전소 인허가의 발단은 전력 시장의 지역 편중이었다. 2023년 현재 수도권은 전체 전력의 40.2%를 쓰지만 생산은 27.4%에 그친다. 호남 지역과 강원 지역은 각각 7.8%와 5.8%를 쓰지만 13.7%와 12.7%를 생산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36년까지 56조5000억원을 들여 동해안과 서해안의 원전, 화력발전소,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 설비를 늘리고 있다.

동서울변전소는 동해안(주로 울진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핵심 사업이다. 2024년 동해안 지역의 총발전능력은 17.9GW인데 송전능력은 10.5GW에 그쳐 최대 7.4GW분의 전기를 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강원 지역 석탄발전소 5곳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허가 취소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할 가능성도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충청·호남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망 확충 작업도 지자체와 주민 반대로 길게는 12년 가까이 공사가 늦춰지고 있다.

유 교수는 “한전에만 맡겨서는 발전소와 송전선을 건설해도 변전소를 짓지 못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총리실 등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효/한재영/오유림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