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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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국내 2차전지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된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이들 기업에 대한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2차전지株 다시 담는 외국인·기관

"전기차 화재에 초비상인데"…외국인 쓸어담은 '의외의 종목'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을 1189억원(4위) 순매수했다. POSCO홀딩스도 1151억원(5위) 담아 순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은 지난 21일 하루에만 LG에너지솔루션을 510억원 사들여 당일 순매수 1위 종목에 올랐다.

외국인이 LG에너지솔루션을 하루에 500억원 이상 담은 건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기관도 이달 들어 포스코퓨처엠과 LG에너지솔루션을 각각 630억원과 548억원어치 사들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2차전지 기업들 순매수에 나선 건 주가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잇단 화재 발생 사건 이후 2차전지 기업들에 대한 주가는 최근 1년 꾸준히 하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7월 주가 62만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려 지난 5일에는 상장 이후 최저가인 31만1000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 3월 80만원대 주가 수준을 기록한 삼성SDI도 지난 5일 주가가 29만4500원까지 내렸다.
지난 1일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가 2차 합동감식을 받기 위해 지게차에 실려 정비소 내부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일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가 2차 합동감식을 받기 위해 지게차에 실려 정비소 내부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달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소비자 사이에서 '전기차 포비아'가 나타나며 2차전치 기업들에 대한 투심은 더 악화되기도 했다. 에코프로는 이달 들어서만(23일 종가 기준) 주가가 7.26% 내렸다. 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머티도 각각 5.99%와 7.17% 하락했다.

증권가에선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주가 수준이 낮다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주가가 공모가(30만원)에 근접했고, 삼성SDI는 약 1년6개월 만에 주가가 60% 넘게 떨어졌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삼성SDI의 주가는 초저평가 영역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며 "2017년 이후 최저점 밸류에이션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정부 권고에 따라 국내에서 전기차를 제조·판매하는 모든 브랜드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면서, 2차전지 투자심리 회복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공개 차량 가운데 절반 이상(62.3%)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의 제품으로 파악됐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 차종별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고 정부는 전기차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9월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훨훨' 나는 전고체 배터리 관련株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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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화재 관련 경계감이 커진 가운데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관련 테마주(株)는 훨훨 날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것으로, 상용화하면 기존보다 주행거리가 늘어날뿐더러 화재 가능성도 크게 낮춘다는 평가다.

전고체 배터리 관련주인 한농화성은 이달 들어 주가가 49% 뛰었다. 한농화성은 LG에너지솔루션, 한국화학연구원과 전고체 배터리용 소재 개발을 진행 중이어서 전고체 테마주로 꼽힌다.

이수스페셜티케미컬과 이브이첨단소재도 이 기간 각각 27.03%와 27.14%씩 올랐다.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은 전고체 배터리 핵심 원료 중 하나인 황화리튬을 생산 중이고, 이브이첨단소재는 대만 전고체 배터리 개발사에 투자한 회사다.

이밖에 레이크머티리얼즈(7.75%), 레몬(25.28%), 씨아이에스(10.56%) 등도 전고체 배터리 바람을 타고 이달 들어 주가가 강세를 나타냈다.

다만 증권가에선 전고체 배터리가 단기간에 개발이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SDI도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잡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으로 예상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화재 사고로 액체 전해질 배터리로는 위험성을 줄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전고체 배터리 관련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전고체 배터리는 일반적인 2차전지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구성 요소가 모두 고체로 이뤄져 있어 액체 전해질 대비 높은 안정성을 보유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판매 둔화로 인해 최근 주가 상승은 '깜짝 반등'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올 1~6월 전기차 판매량 기준으로 역산한 2차전지 시장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으로 전기차 판매량 둔화와 하이브리드 선호 현상에 배터리 수요 부진은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